[이데일리 윤정훈 기자] “진급을 막는 경우가 뭐냐 하면 거의 그거예요. 성관계. 북한은 간부들이 성관계를 통해서 진급을 시키거든. (관계를 안하면) 직업생명, 인생이 끝나는 거예요.”
2021년 탈북한 자강도 출신의 남성 A씨는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NKDB는 지난 22일 2019~2023년 유엔의 북한인권에 대한 제3차 보편적 정례검토(UPR) 결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 작성을 위해 NKDB는 2019년부터 2023년 사이 탈북한 20명에 대해 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 (AI가 가상으로 연출을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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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성관계 강요가 들어와서 신고를 해도 증거가 없다. 신고를 하는 건 진짜 1000명 중 1명이다. 해결되는 건 못봤다”며 “근데 여자들이 대부분 수락을 한다. 진급하기 위해서 99.99%, 안하면 기회를 놓치고 자기 인생이 좀 힘들어지니깐”이라며 참담한 상황을 전했다.
여성이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 불륜도 빈번하게 이뤄진다고 했다. 2019년 탈북한 평안남도 출신 남성 B씨는 “여자가 그만한 직책에 올라간다는 정도면 무조건 불륜이 기어들어간다”며 “남편이 그걸 감수하냐 못하냐다. (이런)여자들의 경우는 남편을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혼하면 자기한테 피해가 가니깐 그냥 집에 두고 사는것”이라고 북한의 실태를 토로했다.
조사대상자들의 75%는 2019년 이후 직장 내 성 차별이 발생했을 경우 처벌이 없다고도 응답했다. 반면 북한은 공식 보고서를 통해 전문적인 환경에서 성 차별은 거의 없거나 전혀 없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2021년 발간한 자발적 국가 검토보고서(VNR)에서 “이미 성평등을 달성했으며, 대부분의 전 세계적인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SDGs)가 달성됐다”고 명시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2022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최선희 외무상이 임명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 김여정과 딸 김주애의 동반 출연 등을 예로 들며 북한의 변화의 조짐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한다.
|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23년 12월 3일 개막된 어머니대회가 4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폐회선언을 끝으로 폐막됐다고 5일 보도했다.(사진=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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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내 북한 여성권 연구가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한 전문가는 “최선희의 지명은 한 개인의 능력에 기반한 것일 뿐, 북한의 여성권 제고와 연결지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최근 통일부가 발표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를 보더라도 4367명의 응답자 중 74.9%가 불평등이 존재한다고 답했다. 다만 배급제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주로 하는 북한사회에서 여성의 위상이 오르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파악됐다. 북한은 1990년대 이래 여성이 생계 유지를 위해 시장경제로 내몰렸고, 남성은 돈을 받을 수 없는 직장에 강제 출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하지만 경제력을 여성이 책임짐에도 여전히 봉건사회적 여성의 책임성이 유지되고 있어 여성들이 ‘이중고’를 겪는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북한 여성들의 결혼 연령도 2006~2010년 24.6세에서 2016~2020년에는 26.2세로 높아졌다. 30세 이상 결혼 응답비율도 같은 기간 2.7%에서 17.5%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NKDB는 “응답자들은 북한의 남녀평등 정책 중 유일하게 ‘부녀자의 날’이라 불리는 3.8절만 긍정적으로 답했다”며 “1년에 하루 여성들이 한데 모여 소풍을 떠나는 기념일이 2019년 이후에도 남녀평등의 상징이다. 그만큼 북한이 여성권의 제고와 성평등 이행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