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호의 PICK]열한 살 아이들도 세상을 고민합니다

재공연 오른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
10대 초반 초등학생의 성장통 다뤄
수영장 모티브 무대 등 재기발랄함 '눈길'
내달 14일까지…유튜브 생중계도 진행
  • 등록 2020-05-25 오전 6:00:00

    수정 2020-05-25 오전 10:35:24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나 엄청 외로웠잖아. 다 잇지나 트와이스 좋아하니까. 트와이스도 좋은데 마마무가 내 원픽이야.”

지난 22일 개막한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의 한 장면. 효정(김별 분)과 소희(경지은 분)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이야기로 떠들썩하다. 이때 영지(박세인 분)가 “난 김완선 좋아하는데”라며 둘의 대화에 끼어든다. “김완선이 누군데?” “있어. 엄청 멋있어. 마녀 같아.”

초등학생의 성장통을 다뤄 주목을 받았던 연극 ‘영지’(허선혜 작, 김미란 연출)가 1년 만에 업그레이드돼 무대에 다시 올랐다. 2018년 국립극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를 통해 ‘병목안’이라는 제목으로 개발한 작품으로 지난해 5월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초연했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작품은 완전무결한 동네 병목안에서 ‘어딘가 이상한 아이’로 불리는 11세 소녀 영지가 동갑내기 소희, 효정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작가가 어릴 적 살았던 동네 이름에서 따온 병목안은 ‘병 안에 들어 있는 작은 마을’처럼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는 완벽한 세상이다. 그러나 영지는 이런 동네가 달갑지 않다. 세상 밖이 궁금한 영지에게는 자신에게만 보이는 친구 악마선생들과 숨겨진 아지트에서 이야기를 만들며 노는 게 가장 큰 즐거움이다.

모범생 소희, 병목안의 ‘어린이 스타’ 효정에게 영지는 두려움의 대상이다. 어른들이 영지를 ‘마녀’라고 부르며 피하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아이는 영지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동안 자신들이 어른들이 바라는 모습대로만 살아왔음을 서서히 알게 된다. 영지가 만드는 이야기 놀이에 동참하면서 아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기 위해 때로는 세상에 맞서 ‘물구나무’를 설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국립극단은 그동안 주로 중·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청소년극을 선보여왔다. ‘영지’가 눈길을 끄는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의 경계에 있는 10대 초반 아이들에게 집중한다는 점이다. 작품은 이제 막 10대에 접어든 아이들도 세상과 자신에 대한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영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마녀의 화형식이 새로운 세상을 향한 환생식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수영장을 모티브로 삼은 무대, 잠망경과 잠수 헬멧을 비롯한 다양한 오브제 등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재기발랄한 요소들이 작품을 더욱 흥겹게 만든다. 이번 재공연에는 장영규 음악감독, 이윤정 안무가가 창작진으로 합류해 다채로운 음악과 몸짓으로 세 아이가 만들어가는 상상의 세계를 동화적으로 그려낸다.

주요 배역인 영지, 효정, 소희 역은 배우 박세인, 경지은, 김별을 새로 캐스팅해 초연과 다른 신선함을 더했다. 이종민, 전선우, 지승태, 최지혜, 하재성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다섯 명의 악마선생 역으로 등장한다. 오는 6월 14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한다. 29일과 6월 1·4·5일 공연은 유튜브를 통한 온라인 생중계를 함께 진행한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의 한 장면(사진=국립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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