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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싸다. 그러나 더 싸게, 단돈 10원이라도 더 깎으려는 ‘초저가 경쟁’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작년만 해도 쿠팡 등 전자상거래업계 중심이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대형마트에 이어 편의점 등 유통업체 및 제조업체까지 전 방위로 초저가 마케팅이 확산하고 있다.
콧대 높던 편의점도 초저가 경쟁 돌입
21일 유통·식품업계에 따르면 편의성을 무기로 ‘출점경쟁’을 하던 편의점업계에 ‘초저가’ 바람이 불었다. ‘실속형’,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앞세운 자체상품(PB)을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CU(씨유)·GS25·이마트24 등 주요 편의점은 각각 ‘실속상품 시리즈’ ‘서장훈시리즈’ ‘민생시리즈’ 등의 PB 브랜드를 선보였다. 편의성을 무기로 ‘출점경쟁’을 하던 편의점업계가 저가경쟁에 나선 분위기다.
먼저 CU는 지난달 31일 출시한 ‘CU 실속500 라면’(500원)에 이어 900원 커피, 1500원 식빵·모닝롤을 출시하는 등 ‘실속상품 시리즈’를 잇따라 내놨다. 또 1인 가구들의 경우 단기간 내에 소비가 어려운 점을 고려해 증정(+1) 행사 대신 반값 할인해주는 전략으로 마케팅 방향을 수정했다. 이를테면 1만7900원에 덤 증정행사를 했던 롤티슈는 8950원에, 1ℓ 세제는 4000원에서 2000원으로 가격을 낮춰 판다.
이마트24는 민생라면(390원), 도시락김(16봉·3180원), 황사마스크(KF94·470원) 등을 팔고 있다. 일반 편의점 상품 대비 가격이 20~50% 저렴하다. 특히 민생라면은 지난해 10월 출시 당시 가격인 550원에서 390원으로 낮춘 뒤 3주 만에 100만개 판매를 돌파했다. GS25의 ‘서장훈 슈퍼롱치즈김밥’은 가성비를 앞세웠다. 일반 김밥보다 길고 양이 많은 서장훈 시리즈 4종은 2개월 만에 160만개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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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는 ‘생수 전쟁’에 돌입했다. 생수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지만 온라인쇼핑몰에 고객을 뺏기면서 온라인보다 더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고 나섰다. 이마트의 대표 상품인 ‘국민워터’는 2ℓ짜리 6병을 1880원에 내놨다. 병당 가격은 314원이다. 기존 대표 PB 상품 대비 30% 가량 저렴한 가격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생수 생산지를 이원화해 이마트 물류센터와 가까운 생산지에서 상품을 받는 방식으로 물류비를 낮추는 등 물류 프로세스 효율화를 통해 가격을 초저가에 선보일 수 있었다”며 “생수공장의 가동률을 높인 것도 가격 인하에 한 몫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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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거리 가격 경쟁도 치열하다.
오뚜기는 2008년 이후 가격을 동결한 ‘진라면’(750원)보다 싼 500원짜리 라면인 ‘오라면’을 내놨다. 출시 20일 만에 500만개가 팔렸다. 신세계푸드는 ‘노브랜드버거’를 1900원에 출시, 온라인상에서 ‘착한 버거’로 호평 받으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신제품 ‘테라’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기존 ‘하이트’에 맞췄다. 신제품을 출시하면 가격도 따라 올리는 기존 관행을 뒤집은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하이트진로가 영업이익을 상당 부분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카스’ 출고가를 인상했던 오비맥주는 이날 출고가를 다시 인하했다. 지난 4월 오비맥주는 출고가를 5.3% 인상했다. 그러나 하이트진로의 테라 돌풍이 예상을 뛰어넘자 원래 가격으로 복귀하게 됐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의 ‘2019년 4분기 소매유통업 경기전망지수(RBSI)’에 따르면 대형마트는 5년간 기준치(100)를 밑돌다가 최근 더 떨어지면서 81을 기록했다. 2014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다. 이어 편의점은 78, 슈퍼마켓은 75를 기록했다.
RBSI는 소매유통업체들의 현장체감 경기를 수치화한 것으로 0~200 사이로 표시된다. 100을 넘으면 경기가 전 분기에 비해 호전될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더 많고 100 미만이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