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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생산라인 직원들은 재택근무가 당연히 불가능하고 사무직들도 수시로 현장을 점검하고 미팅을 가져야 해서 일부를 제외하면 재택근무가 쉽지 않다”며 “방역을 강화하긴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재택근무를 시행 중인 기업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업무 효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달리 사무직들이 맡는 업무영역이 넓은 탓에 재택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인사팀장이 생산직원 관리까지 겸임하는 등이다. 아울러 재택근무를 위한 업무지원 시스템이 미비한 것도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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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 업체 알서포트에 근무하는 이주명 마케팅팀장은 재택근무에 들어간 지 2주째다. 이 팀장은 9일 오전 9시 메신저에 개설된 단체대화방을 통해 회사 직원들과 아침 인사와 함께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어 9시 30분부터 부서원 전체가 참여하는 원격 화상회의에 참여했다. 이를 통해 오늘 하루 업무 일정을 공유하고 조율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 부서장 공지사항과 업무 진척사항은 메신저와 함께 레드마인(프로젝트 업무관리 솔루션)을 통해 확인했다. 회사 PC에 있는 데이터가 필요할 경우 원격제어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오후 들어서는 회사 사무실 전화를 착신 전환해 놓은 휴대폰과 메신저를 통해 날아드는 메시지와 화상회의 등으로 정신없이 바빴다. 오후 6시엔 메신저를 통해 퇴근을 알리고 PC 전원을 껐다. 이 팀장은 “업무지원 시스템이 뒷받침해 준 덕에 회사에 출근해서 일하는 것 못지않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업무지원 시스템 미비는 결국 ‘반쪽짜리’ 재택근무로 이어진다. 현재 재택근무를 시행 중인 회사라고 해도 전체 직원이 모두 재택근무 중이라는 응답 비율은 18.4%(81개사)에 그쳤다. 가장 많은 19.7%(87개사)가 50%만 재택근무 중이라고 답했고, 신청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시행하는 곳(4.8%·21개사)과 재택근무자 비율이 20%에 그친 곳(4.8%·21개사)도 적지 않았다.
퇴근없는 재택지옥…육아·살림·업무까지 3중고
중소 교육업체에 근무하는 A과장은 재택근무를 ‘재택감옥’이라고 표현했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둔 워킹맘인 A과장은 “아이들 개학이 늦어지고 학원마저 ‘올스톱’하면서 재택근무가 불가피했다. 다행히 회사에서도 재택근무를 독려하는 상황”며 “다만 아이들을 돌보며 일을 해야 하니 출퇴근 구분 없이 계속 일을 하는 비효율이 이어진다. 밤에 아이들을 재운 후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말했다.
사람인 설문조사에서 재택근무 시행 시 기존업무를 얼마나 수행할 수 있냐는 질문에 가장 많은 23.8%(105개사)가 ‘80%’라고 답했다. 이어 ‘70%’(21.8%), ‘50%’(21.1%) 순으로 나타났다. ‘100%’라고 답한 비율은 7.5%(33개사)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재택근무가 새로운 근무형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효율적인 업무지원시스템과 회사와 근로자 간 신뢰 구축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장은 “인사평가를 앉아있는 시간 등(인 풋)이 아닌 업무성과(아웃 풋)를 양과 질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며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만 한다면 집에서 하든 회사에서 하든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노용진 서울기술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재택근무가 확산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근로자 간 신뢰 구축이 우선돼야 한다”며 “업무특성상 재택근무가 쉽지 않은 업종과 직무는 출퇴근시차제, 시간선택제 등 근무방식을 유연화하는 게 기업의 생산성 제고와 고급 인력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