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글로벌 환경규제의 문턱이 높아지자 다시 돛(풍력을 이용해 선박을 움직이게 하는, 갑판과 수직으로 된 장치)을 다는 선박이 나타나고 있다. 풍력을 에너지로 활용해 연료 사용량을 절감하고 이에 따른 탄소 배출량도 줄이겠다는 게 이들 선박의 궁극적인 목표다.
| ▲싱가포르 해운사 버지 벌크(Berge Bulk)의 21만DWT급 건화물선 벌지 올림푸스(Berge Olympus)에 윈드윙 4대가 설치된 모습. (사진=BAR 테크놀로지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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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외신에 따르면 일본 미쓰비시상사는 최근 8만DWT(재화중량톤수)급 건화물선 픽시스오션(Pyxis Ocean)에 사상 최초로 풍력 추진용 돛인 ‘윈드윙’(WindWings)을 설치하기로 했다. 해당 선박은 미국 최대 곡물 트레이딩 업체 카길(Cargill)이 운용하고 있는 선박으로, 내년 초 윈드윙을 설치한 직후 상업 운행에 나설 예정이다.
윈드윙은 영국 BAR(BAR Technologies)와 노르웨이 야라(Yara Marine Technologies) 등이 개발한 풍력 추진용 돛으로, 그 높이는 최대 45m에 달한다. 윈드윙을 화물선 갑판에 설치해 풍력을 이용하면 탄소 배출량을 최대 30%까지 줄일 수 있다는 게 이들 업체의 설명이다. 윈드윙 개발 프로젝트엔 카길과 노르웨이 선급 DNV 등도 힘을 보탰다.
얀 딜먼 카길 해상운송사업부 사장은 “지금까지 픽시스오션 정도 규모의 상업용 선박에 풍력 추진용 돛을 설치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며 “카길은 이를 통해 풍력 등 탄소가 배출되지 않는 연료로 선박을 운항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카길은 이번 설치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자사가 운용 중인 선박에 추가로 윈드윙을 설치할 방침이다.
이 밖에 BAR와 야라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에도 싱가포르 해운사 버지 벌크(Berge Bulk)와 21만DWT급 건화물선 벌지 올림푸스(Berge Olympus)에 윈드윙 4대를 설치한다는 계약을 맺었다. 윈드윙은 2023년 2분기까지 설치될 예정이다. 버지 벌크 측은 “윈드윙 설치로 줄어드는 배기가스양을 고려해 이를 설치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해사기구(IMO)가 조선·해운 관련 환경규제를 강화하려는 추세를 보이자 조선·해양업계에선 풍력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움직임을 나타내고 있다. 당장 대형 화물선을 바람의 힘으로만 끌고 가기엔 한계가 있는 만큼 현재는 윈드윙과 같은 풍력 추진 시스템을 이용해 보조 장치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이다.
| ▲브라질 발레사 장기 운송계약에 투입 예정인 팬오션의 초대형 철광선 운반선(VLOC) ‘SEA ZHOUSHAN’호. (사진=팬오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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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선 ‘로터 세일’(rotor sail) 방식의 풍력 추진 시스템을 연구 중이다. 로터 세일은 윈드윙(날개 돛)과 달리 선박 갑판에 원통형 기둥을 수직으로 세워 풍력으로 해당 기둥을 회전시킴으로써, 압력 차이를 만들어 선박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게끔 하는 장치(원통 돛)를 말한다. 업계에선 로터 세일 기술을 쓰면 운항 선박의 연비가 6~8% 높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팬오션(028670)은 지난해 5월 국내 최초로 브라질 발레(Vale)사와 협업해 초대형 철광석 운반선에 높이 24미터(m), 지름 4m 규모의 로터 세일 5대를 설치한 바 있다. 또
대우조선해양(042660)은 지난 4월부터 경남 거제시, 방재시험연구원과 함께 로터 세일 등 풍력 추진 시스템을 개발하는 인프라를 옥포국가산업단지에 오는 2026년까지 구축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조선·해양업계는 풍력을 활용해 기존 연료 소비량을 줄이면 연료 비용과 탄소 배출량을 동시에 줄일 수 있어 이점이 크다고 보고 관련 기술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면서도 “아직 대형 선박을 원하는 대로 운항하기 위해선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해 풍력만으로 운항하는 선박을 개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