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토교통부 공식기록에 의하면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가 2330만대를 넘었다고 하니 대강 국민 두 명 중 한 명은 차를 보유한다는 것이다. 등록 대수는 2013년 대비 1.18배가 되었다. 참 많은 자동차가 도로에서 북적이고 있는 상황이다. 보유 차량의 수가 많으니 크고 작은 교통사고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루 평균 594.9건의 교통사고로 10.4명의 사망자와 885명의 부상자가 속출한다고 하니 이 역시 심각한 수준이다. 교통사고에 대한 민사책임의 해결은 통상 자동차 책임보험에 의하는데 최근 자동차 책임보험 운용에 몇 가지 붉은 신호등이 켜졌다. 그중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자동차 책임보험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자의 도덕적 해이이다.
자동차 사고로 인사사고가 발생한 경우 자동차손해배상 보장법(이하 자배법) 및 자동차보험 표준약관에는 진단서를 보험금 청구 시 제출서류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진단서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하여 보험금 지급을 거절할 수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쁜 마음만 먹으면 진단서 없이도 무기한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자배법 시행령에 따르면 상해 정도가 가장 높은 1급에서부터 가장 낮은 14급까지의 급수로 구분하여 책임보험금의 지급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 진단서 제출이 없는 경미 사고환자를 통상적으로 14급으로 처리하고 있다. 문제는 그 비중이 전체 부상환자의 약 70%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대인사고는 이 범위에서 발생한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보험개발원 자료에 의하면 14급 부상 인원이 2013년 대비 2017년에는 2.3배가 되었고, 이에 대한 대인배상의 지급보험금은 4.9배로 나타나 경미 사고환자의 증가와 함께 지급 보험금액도 급증하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문제가 된 기간 내에 누적 차량 대수가 증가한 만큼 14급 부상 인원이 늘고 그에 비례하여 지급 보험금액도 증가한 것이었다면 이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갈 만한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유독 경미 사고환자의 비율이 크게 늘었고, 나아가 이와 함께 1인당 진료비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해서 이것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이 두 가지 복합적인 사안이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에 치명적인 원인이 되었고 이는 결국 선량한 보험계약자의 몫으로 돌아간다는 것, 역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동일한 치료대상에 대한 진료단가의 증가가 원인인지, 의료계의 장기 과잉진료가 그 원인인지, 그도 저도 아니면 환자들이 스스로 치료를 장기적으로 요구하여 이렇게 된 것인지는 가려봐야 할 부분이다. 적어도 의사들의 진료단가 자체가 과거보다 두어 배 이상 올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는 자동차 경미 사고의 경우 진단서 없이도 치료가 가능한 14급으로 처리하는 것과 함께 진단서 없음에도 무기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활용하여 과잉진료 내지 통상적인 진료 기간을 벗어나 장기간 진료를 하려는 쪽, 그리고 치료가 완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얹어서 지속적으로 진료를 받으려는 쪽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는 없다.
의사는 전문가이고 의사가 발급하는 진단서는 신뢰의 대상이다. 진단서란 환자의 상태를 진찰하거나 검사한 결과를 기재한 문서로써 적정 치료기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된다. 인적 사고 시 사고를 당한 자에 대한 진료 기간과 범위는 전문가의 진단에 근거할 수밖에 없고 일반인도 이것을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진단서가 발급되지 아니한 경우를 14급에 준해서 치료해주고 적정 치료기간이 명기된 진단서가 없다 보니 무기한 치료가 가능하다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제도적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이를 그릇되게 활용하는 것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는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것이 지나치면 보험사기로 볼 여지마저 있다. 보험은 좋은 제도이지만 잘못 활용하거나 악용하는 순간 우리의 기본적인 심성을 바꾸어 놓는 필요악의 도구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심각성에 비추어 볼 때 자동차 사고에서 대인배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자동차 인신사고의 처리는 원칙상 의사의 진단서에 근거하여야 한다. 진단서 제출이 없는 경미 사고환자의 경우는 특별한 손해에 대한 환자 측의 증명이 없더라도 통상의 진료 기간 내에서 충분한 치료를 보장할 필요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가치료는 의학적인 객관적인 절차에 따라 작성된 진단서 등과 같은 객관적 자료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보장하여야 한다. 이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서 처리하는 방법과 동일한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이에 관한 기준을 신속하게 마련하여야 한다. 다만 이를 위한 기본전제로써 환자의 진료권은 어느 경우에도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