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후 관점디자이너] ‘꼰대’는 과연 어떤 사람을 일컫는 말일까요? 나이가 많은 사람? 생각이 고루한 사람? 말이 안통하는 답답한 사람? 사람마다 꼰대의 정의는 다를 수 있습니다. 사전적 정의로는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기성세대를 속되게 이르는 말입니다. 그러나 제가 최근에 들은 꼰대의 정의는 압권이었습니다. “입력(入力)은 멈춘 상태에서 출력(出力)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말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꼰대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모른다. 그러나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꼰(어린 꼰대)도 있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말도 하더군요. 다행인 것은 나이가 많다는 것만으로 꼰대취급을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위안삼을 수 있었습니다.
살아온 시간이 내 인식 속에 새겨 놓은 수 많은 것들이 내 생각을 좌지우지합니다. ‘정보를 통합하고 조직화하는 인지적 개념’ 그걸 스키마(schema)라고 부르죠. 새로운 인식들이 들어오고 기존에 갖고 있던 인식과 비교해 바꿀지 말지를 결정합니다. 세상이 만들어준 인식에 자기 생각이 힘없이 끌려다닐수도 있습니다.
저는 ‘꼰대’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바꿀 마음이 거의 없는 사람. 자기 생각이 틀렸음에도 고칠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생각이 틀렸다고 우기는 사람. 생각의 신선도가 떨어지는 사람. 공부는 거의 하지 않으면서 공부한 사람을 기존에 본인이 경험한 것만으로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라고.
저의 꼰대에 대한 정의는 신체적 나이를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기준점은 ‘생각의 신선도’입니다. 생각은 마치 물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생각도 오염될 수 있습니다.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마시려면 오염되지 않은 물이 샘솟는 곳을 알거나 물을 정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잘못된 생각을 걸러내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항상 새로운 생각을 받아들여 순환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생각을 신선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존의 틀에 생각이 고정돼 있으면 다른 사람들의 사고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는 힘이 떨어집니다.
얼마전 김건희 여사가 서클렌즈를 낀 사진이 공개되면서 갑론을박이 시작됐습니다. 영부인답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머리 속에 질문 몇개가 떠올랐습니다. 첫째, 대통령 부인이 서클렌즈를 끼면 왜 안되는 것인가? 둘째, 서클렌즈 낀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가 내린 답은 이랬습니다. 그간에 쌓였던 우리의 통념, 즉 ‘그래야 한다는 인식의 지배’였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표현하는 수단인 서클렌즈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런 모습이 싫었던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개성을 표현하는 것조차 ‘그러면 안된다’고 하는 통념이 인식을 지배하고 그 생각이 ‘싫다’라는 감정으로 연결되고 있었던거죠. 싫다는 감정이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면 문제는 더 커집니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하거나 과거 경험만을 기반으로 현실을 해석하는 편견이 생각시스템으로 작동하면 꼰대의 생각이 될 확률이 높아집니다.
사피엔스라는 책을 쓴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후속세대에게 가르쳐야 할 과목은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과 마음의 균형(mental balance)이다. 지금까지는 20살까지 배워서 평생을 먹고 살았지만 이제는 나이 예순에도 여든에도 계속 공부를 해야한다. 마음이 유연하지 않은 사람, 경직돼 있는 사람은 견디기 힘들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나는 이 글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생각을 신선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생각이 상하고, 마음이 상할 것이다”라고. 경험한 생각에만 갇혀 있거나 나만 옳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고립되기 쉽습니다. 생각과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떠날테니까요. 지금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내 생각은 신선(fresh)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