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도전하고 실패하라, 끝내 이기리라

  • 등록 2020-12-31 오전 6:00:00

    수정 2020-12-31 오전 6:00:00

[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 이제 얼마 후면 ‘살아온 것’이 아닌 ‘살아내야’ 했던 모두가 잊지 못 할 한 해, 2020년과 영원한 작별을 한다. 이른바 대역병의 펜데익 생존연대기(Era)와의 이별. 사회적 거리두기 만큼이나 멀어진,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이 아쉬운 요즘이다. 해마다 년 말 시즌이 되면 볼 수 있는 송년모임의 분주함, 구세군 자선냄비의 종소리는 쇼 윈도우에 비친 텅 빈 세밑의 풍경 속에 쓸쓸하게 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섣달그믐이 되면 구리 료헤이의 단편소설 ‘우동 한 그릇’이 다시 떠오른다. 소설은 짧지만 여운은 길고 세상을 따뜻하게 하는 휴먼 스토리이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이 한마디를 하는 우동 집 주인의 소리가 정겹다. 소설은 북해정(北海亭)이라는 우동집에 허름한 차림의 부인이 어린 두 아들과 같이 와서 우동 일인분을 시키자, 가게주인이 이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넉넉하게 우동을 담아주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모자 셋이서 일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의사와 은행원으로 장성한 두 아들이 우동가게를 다시 찾는다. 보은(報恩)과 감사(感謝)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정겨운 장면이다.

로버트 드니로와 앤 해서웨이 주연 영화 ‘인턴’에 나오는 프로이트의 금언, ‘인간답게 사는데 필요한 것은 아주 간단하다. 사랑할 사람과 할 일.’ ‘우동 한 그릇’의 메시지가 동서양을 관통하여 전해지는 대목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국내외 10대 뉴스가 지면을 장식하고, 여러 국책 및 민간기업 경제연구소에서는 내년도 우리의 삶과 경제여건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예측하여 내놓는다. 이번에는 특히 코로나가 종식된다는 가정 하에 그 이후의 경제회복에 관한 전망을 국내외 석학들의 설문 등을 종합하여 선진 각국들과 함께 비교하여 내놓고 있다. 새해는 아마도 백신을 조기에 도입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로 나뉘어 지구는 더욱 양극화의 거센 도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도 행운의 여신이 나타나 백신이 조기에 공급된다 하더라도 반도체 산업이 이끄는 착시 현상을 걷어내면 다른 나라들처럼 애프터 코로나의 낙관적 경제 회복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피하고 싶으나 이번에는 솔로몬이 말한 지혜 ‘이 또한 지나가리라’가 틀릴 수도 있다. 사실 년 말이 되어 내놓는 글로벌 경제이슈와 국내 거시경제 전망 등은 지금 이 시간 실의와 좌절을 마주한 많은 이들에겐 먼 나라의 이야기로 들릴 뿐이다. 뉴노멀로 접어든 시대, 고용 없는 성장과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은 사상 최악의 청년 실업,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중장년층의 갑작스런 조기 은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폭증한 전월세비와 집값, 수차례의 강력한 방역대책으로 매출이 끊기고 폐업을 해야 하는 자영업자들과 중소기업들, 그리고 치열한 경쟁에서 좌절을 맛본 수많은 우리의 수험생들.

지금 우리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들에게 따뜻한 우동 한 그릇과 100세 시대를 살아갈 마음의 각오에 새로운 도전과 용기를 주는 것이다. 스스로 다시 일어서고 도전하고 개척할 수 있는 성숙한 배려와 따스한 정이 그리운 요즘, 인간의 본능과 공동체를 향한 사랑은 역사가 증명하듯 정치권력에 오염된 법과 제도만으로 제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견디기 힘들 정도로 오래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 모두에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참회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도전의 시간을 가져보길 권하고 있다.

세밑저녁 거리에 울려 퍼질 스코틀랜드의 민요 ‘올드 랭 사인’의 한 구절, “그래 악수 하게나 내 믿음직한 친구여”, 코로나로 인해 반가운 악수도 할 수 없는 어두운 2020년을 떠나보내며, ‘도전하고 실패하라, 끝내 이기리라!’, 새로운 다짐으로 신축년(辛丑年) 첫 날을 힘차게 맞이하자.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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