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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암 진단을 받고 한동안 활동을 중단했던 방송인 겸 작가인 허지웅이 최근 완치 판정을 받고 건강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다시 섰다. 그는 혈액암의 일종인 악성 림프종을 앓았던 투병과정을 공개하며 많은 응원을 받았다. 하지만 자신의 병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해가 갈수록 20∼30대 젊은이의 암 발병률이 늘어나고 있단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이들이 자신의 투병기를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스스로 공개하며 많은 사람들의 응원 속에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 최근 그들이 겪고 있는 투병기를 엮어낸 책 두 권이 잇달아 출간돼 시선을 끈다. 하나는 30대에 유방암 선고를 받은 미스킴라일락(필명)의 ‘유방암이지만 비키니는 입고 싶어’고, 다른 하나는 위암 4기 선고받은 날부터의 기록을 그림과 글로 엮어낸 그림작가 윤지회의 ‘사기병’이다. 내용과 형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두 책에는 우울할 수 있는 암 투병기를 발랄하고 씩씩하게 담아내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삭발의 꿈이 이루어질 줄이야. 어서 와, 유방암은 처음이지?’ 에필로그부터 범상치 않다. ‘유방암이지만 비키니는 입고 싶어’는 4기 암을 이미 겪은 저자가 유방암 선고를 또 받은 후 항암 치료와 재발을 경험하면서 겪은 암 환자 버전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저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당당히 암 환자라는 사실을 알리고 병동 생활과 항암 과정, 회복 후 병원과 집을 오가며 힘겹게 받았던 치료 과정을 발랄하게 담아낸다. 암 환자의 일상을 통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아프기 전에는 해보지 못했던 일을 시도하며 씩씩하게 개척해 가는 제2의 인생을 공개하는 것이다.
“가만히 나에게 말을 건넸다. ‘가슴아, 잘 들어. 내가 좀 미안한 일이 있어. 안 그래도 너를 그렇게 성장시켜 주지 못해서 미안했는데 말이야… 내일이면 그마저도 더 작아질 거래.’ 남의 것을 허락 없이 쓰면 실례지만 동의를 구하면 문제가 없듯이, 왠지 내 몸에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7쪽).
“의료진은 내 가슴 위에 펜으로 긴 선들을 하나씩 그리기 시작했다. 아, 이건 마치 내가 돼지고기가 된 느낌이었다. 담당의사는 정육점 주인이고, 둘러선 의료진은 고기를 살펴보는 손님, 뭐 그런 느낌”(34쪽).
암 환자의 일상을 무겁지 않은 톤으로 솔직·대담하게 풀어낸 투병기. 전이암 4기로 자칫 잃어버릴 수 있었던 삶의 희망을 특유의 위트와 재치로 뒤바꿔 우리에게 되돌려 준다.
암도 어쩌지 못한 악착·발랄 투병기를 담은 에세이집 ‘사기병’은 인스타그램 누적 5000만뷰에 달하는 화제작이다. 저자는 그림책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던 어느 날, 위암 4기 판정을 받고 투병을 시작했다. ‘4기’가 ‘사기’였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제목을 지었다.
마음껏 먹을 수 없으니 식탐은 늘고, 깔끔이소리를 들어왔지만 항암치료로 어떤 때는 한 달 넘게 샤워도 못했다. 어린이집에 등원하는 아들의 뒷모습에, 유난히 파란 하늘에, 새잎이 돋은 나무만 봐도 ‘내년에도’에 대한 바람이 연이어 생각을 뚫고 나온다.
8차 항암치료를 무사히 마치고 쉴 틈도 없이 발병 1년 6개월 만에 암은 다시 난소로 전이됐다. 찰랑찰랑하지는 않지만, 가발을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남아 있어 준 머리카락에 대한 미련도 이제는 버렸다고 했다. 늘 예상 밖의 일이 튀어나와 마음 한 가닥도 편히 놓을 수 없는 긴장감 속으로 인생을 몰고 간다. 하지만 ‘1년 안에 재발할 확률 80%’를 지나왔듯이 저자는 앞으로도 이 확률과의 싸움만큼은 마음먹은 대로 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항암공부로 똘똘 뭉친 가족, 난데없이 푸시킨의 ‘삶’을 이야기하며 수줍게 마음을 고백하는 ‘갱상도 사나이’ 아버지, 천방지축 뛰다가도 이내 꽃잎 한 장을 주워 엄마 손에 꼭 쥐어줄 줄 아는 아이까지. 책에는 저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내 건강과 가족, 주위는 미처 돌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이들에게 매일매일 누리는 일상의 가치를 일깨우는 진심이 담긴 서신이자 희망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