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8월에 개봉해 1300만명 관객을 모은 영화 ‘베테랑’을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영화 개봉 6년이 지난 현재 인수합병(M&A) 시장을 보면 영화 베테랑의 대사가 고스란히 재현되는 모습이다.
과거 M&A 시장에서 사랑받던 매물들은 국내외 공장이나 부동산, 조선소 등 막대한 ‘케파’(생산능력)를 갖춘 기업들이었다. 그러나 최근 M&A 시장의 대세가 이른바 ‘아카이브’(누적 데이터) 기반 매물로 넘어가고 있다. 눈에 보이는 유형 자산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누적 콘텐츠나 데이터에 후한 밸류에이션(기업가치)을 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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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 시장 대세…부동산 아닌 누적 데이터
이러한 흐름은 올해부터 본격화된 모습이다. 지난달 국내 1위 채용 플랫폼인 잡코리아가 9000억원에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를 새 주인으로 맞았다.
어피너티에 잡코리아를 매각한 H&Q는 미국 몬스터월드와이드로부터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잡코리아 지분 전량을 사들이며 최대주주가 됐다. 당시 투자 규모는 총 2050억원 수준. 이번 매각으로 H&Q는 산술적으로 최대 4.5배 가까운 엑시트(자금 회수)에 성공했다.
그러나 시장에서 주목한 점은 아카이브에 대한 잠재력이다. 잡코리아는 온라인 채용정보 시장점유율 40%를 확보한 업계 1위 사업자다. 개인회원 2700만명(기업회원 450만곳)에 업계 최초 모바일 앱 누적 다운로드 수가 4000만명을 돌파했다.
잡코리아가 소유한 ‘알바몬’으로 범위를 넓히면 잠재력이 더 강해진다. 파트타임 채용 플랫폼에서 알바몬의 시장점유율(MS)이 60%에 육박하며 잡코리아의 시장점유율을 웃돌고 있다.
어피너티는 인수전에 뛰어들 때부터 잡코리아가 구축한 취업·구직 관련 빅데이터에 주목했다는 분석이다. 취업자들의 정보나 관련 산업군에 대한 핵심 자료만으로도 인수 의지를 충족시켰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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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가 밸류업 핵심…PEF들도 예의주시
카카오도 이달 초 여성 의류 플랫폼 지그재그를 인수하며 맞불을 놓은 모습이다. 2015년 출시한 ‘지그재그’는 동대문 등 4000곳 이상의 온라인 쇼핑몰과 패션 브랜드를 모아 개인화 추천과 검색, 통합 결제를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다. 올해 연간 거래액 1조원을 바라보며 차기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인 스타트업)으로 꼽히고 있다. 두 기업 모두 수백만 가입자를 보유한 고객 아카이브가 인수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이밖에도 월 7200만명 사용자를 보유한 네이버웹툰, 카카오톡을 기반으로 수천만 사용자를 확보한 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이 해외 투자를 유치하며 미국 증시 상장을 검토하고 있다.
최근 M&A 시장에 나온 웹 소설 플랫폼인 ‘문피아’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등록 작가 수만 약 4만7000명으로 지난해 기준 국내 웹소설 시장에서 네이버와 카카오에 이어 3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시장에서 점치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만 3000억원에 육박하며 5년 새 기업가치가 6배 가까이 뛰었다.
이들 기업에 보이는 관심의 이면에는 각 사업군에서 쌓은 고객 데이터로 향후 신사업 전개가 용이하다는 전략이 숨어 있다. 실제로 PEF 업계에서도 아카이브가 견고한 사업자의 밸류업이 훨씬 더 잠재력 있다 판단하고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이나 지분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오프라인 매장 대신 스마트폰이나 온라인을 통한 구매가 익숙해진 최근 소비 경향에 고객이나 콘텐츠 아카이브는 향후 기업 중장기 전략에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