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욱 리벨리온 최고기술경영자(CTO)는 최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코어를 분야별로 재조합해 내는 기술로 AI 반도체를 차별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도체를 하나의 계산기로 본다면, 큰 계산기를 1개 만들기보다는 성능이 좋은 작은 계산기들을 여러 개 만들어 마치 레고 블록처럼 계속 붙여나가는 개념이다.
특히 잠재력을 인정받아 국내 굴지의 통신기업인 KT(030200)와 세계적인 벤처캐피탈(VC)로부터 투자도 받았는데, 이것이 단순 투자를 넘어 향후 회사가 경쟁력을 키워갈 수 있는 기틀이 돼 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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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왓슨연구소에서 AI 반도체 수석설계자로 근무한 오 CTO는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를 나와 인텔·모건스탠리에서 반도체·금융 분야를 경험한 박성현 대표와 함께 리벨리온을 창업했다.
처음 주목한 분야는 파이낸스였다. 초당 수억회의 거래가 이뤄지는 파이낸스 분야에서 남들보다 빠른 속도는 곧 경쟁력이어서다. 더군다나 AI를 활용하려는 요구까지 더해지면서 전용 AI 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럼에도 이 분야는 엔비디아나 등 거대 기업들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틈새시장이라고 봤다. 이에 오 CTO와 박 대표는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2020년 리벨리온을 창업했다.
파이낸스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속도를 갖춘 하드웨어를 개발하면서, 추가적인 기능을 더할 수 있는 코어를 재조합해 칩을 만드는 방식도 이때부터 구상했다. 미국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창업한 이유 역시 오랜 역량을 쌓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가 이같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해줄 수 있을 것으로 봐서다. 결국 1년 만에 속도에 장점을 지닌 금융거래 전용 AI 반도체 ‘아이온’을 선보였다.
올 초에는 데이터센터에 적용할 수 있는 AI반도체칩 ‘아톰’을 선보였다. 처음부터 새롭게 설계한 칩이 아닌 아이온을 여러 개 붙인 ‘멀티코어 칩’의 형태로 만들었다. 제조는 삼성전자(005930) 파운드리의 선단 공정인 5나노 극자외선(EUV) 공정으로 했다.
아톰은 뛰어난 성능으로 주목받았다. 리벨리온은 세계적 권위를 가진 AI 반도체 성능 테스트 대회 ‘엠엘퍼프(MLPerf)’에 의도적으로 언어모델과 비전모델을 각각 제출했다. 개별 코어의 성능에 대한 일종의 자신감이었다. 그 결과 언어모델은 퀄컴의 최신 AI 반도체와 엔비디아의 동급 GPU 대비 1.5배~2배 빠른 처리속도를 기록했다. 비전모델에서도 퀄컴의 1.4배 이상, 엔비디아보다 3배 이상의 속도를 입증했다.
‘탑티어’ 투자자 사로잡아…KT는 주요 고객으로 협업까지
리벨리온은 이미 1000억원이 넘는 투자를 유치한데다 확실한 수요처까지 확보하면서 실질적인 상업화를 이뤄냈다. 창업 3년 만에 이같은 성과를 이뤄냈다는 점은 리벨리온의 잠재력을 방증한다.
이처럼 확실한 고객이 있다는 것은 리벨리온에도 긍정적이다.
오 CTO는 “고객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고, 어떤 방향으로 갈지를 미리 알고 그 분야에 가장 효율적인 해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며 “사용자와의 긴밀한 소통 없이 개발만 앞서면 개발 후 누가 사용해 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KT 뿐 아니라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파빌리온캐피탈과 IMM인베스트먼트, 카카오벤처스 등 AI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탑티어’ 투자자들이 리벨리온에 투자했다는 점도 관심을 끈다.
오 CTO는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시장의 경쟁을 볼 때 좀 더 집중적인 투자로 양적·질적 성장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며 “시기와 방법은 고민해야 하지만 후속 투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투자자를 원하는 것은 단순한 재정적인 안정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들이 가진 경험과 네트워크, 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도 등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리벨리온의 성능·기술 지표는 이미 높은 수준이지만 아무래도 후발주자다 보니 고객사들이 엔비디아에 친숙해져 있다. 이들이 우리의 인터페이스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해 나갈 것”이라며 “수천 명의 엔지니어를 가진 글로벌 기업과 규모 경쟁을 하기는 어렵지만, 작은 스타트업으로서 다양한 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핵심 설계자산(IP)을 개발하는 것도 회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