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감염성 심내막염'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1-11-20 오전 8:54:42

    수정 2021-11-20 오전 8:54:42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지난해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합격한 박 모 환자는 치과 치료도 받고, 그동안 밀린 잠도 자고 친구들과 겨울 스포츠를 즐기며 지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부터 미열이 지속되고 감기같이 약간의 오한도 생겼다. 겨울이라 추운 날씨로 인한 감기와 그동안의 스트레스로 인한 면역력의 저하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지내다가 점차 기력이 떨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밤에 잘 때마다 숨이 차서 순간순간 깨게 되었다.

미열과 감기 기운 때문에 가까운 병원에 들러 감기약을 처방받았고, 항생제도 일주일 이상 복용했다고 한다. 괜찮겠지 생각했지만 점차 호흡곤란이 심해져 아빠와 함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께 외래를 방문한 환자는 가슴을 청진하는 순간, 매우 심한 수축기 심잡음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달 이상의 미열, 치과 치료, 심잡음 등의 증상을 보았을 때, 감염성 심내막염이 강력히 의심되었다. 폐울혈도 이미 동반되어 있어 환자의 아버지인 보호자에게 입원의 필요성과 함께 필요 시 수술적 치료를 요한다고 설명드렸다. 아직 나이가 젊은 편이라 폐울혈에도 어느 정도 견딜만했지만 전반적으로 기력도 없이 외래 앞 의자에 앉아 있는 환자를 보니 아직 결혼도 안했는데 가슴뼈를 열게 되면 그 흉터는 어떻게 할지 속상하기만 하다.

심장 초음파를 시행했을 때 예상대로 좌심실에 있는 승모판막이 심한 역류를 보이고 있고 주변으로 세균 증식 덩어리(vegetation)가 크게 붙어 있어 언제든 머리 쪽으로 떨어져 나갈 수 있었다. 환자의 심장초음파상 보이는 판막 모양을 살펴보면 이번에 세균 증식이 된 부분도 있었지만 승모판 탈출증이 있어 중등도 이상의 승모판막 폐쇄부전을 가지고 있었던 환자로 생각되었다.

심내막염은 심장 안쪽을 싸는 막(심내막)이나 심장 판막에 생긴 염증성 변화를 말하며, 일반적으로 감염성 심내막염이 가장 흔하다. 치과 치료나 수술 혹은 장의 용종 등을 절제할 때, 일시적으로 세균이 혈액 속으로 유입될 수 있지만 건강한 사람은 대부분 세균이 곧바로 제거되므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심장 판막에 병이 있거나, 선천적으로 심장 구조에 이상이 있는 경우 혹은 인공 판막으로 치환을 한 경우에는 세균이 손상된 심내막이나 판막에 쉽게 들러붙어 세균 감염을 일으킬 수 있다. 환자는 기저로 승모판 탈출증에 의한 폐쇄부전이 있던 상태에서 증상 없이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고, 치과 치료 후 서서히 균이 증식하여 심장 조직에 자리 잡은 것으로 생각됐다.

하지만 타 병원에서 항생제를 오래 복용하면서 본원에 방문했을 때는 혈액 안에 균은 자라지 않았지만 완전히 치료가 되지 않아 세균이 집단을 이루고, 지속적으로 자라면서 심하게 심장 판막을 망가뜨린 케이스였다. 감염성 심내막염은 치료하지 않을 경우, 염증이 심해져서 심장의 전도계까지 감염돼버리면 심장 박동에 이상이 생겨 사망할 수도 있고 환자의 경우처럼 판막을 심하게 망가뜨려 심부전증에 빠지게도 한다. 또한, 균 덩어리가 전신으로 떨어져 나가 뇌졸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감염성 심내막염의 발생 빈도는 문헌마다 다르지만 인구 10만 명당 3~10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지난 40년 동안 환자의 평균 연령이 점차 증가하고. 여전히 높은 사망률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이한 사항은 과거에는 거의 모든 환자가 판막 혹은 선천성 심장질환의 과거력이 있었지만 최근에는 특별한 심장질환의 과거력 없이 비교적 건강하게 살다가 심내막염으로 처음 병원을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물론 이 환자들이 정상 심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고 환자처럼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주지 않고, 일반적으로 직장에서 시행하는 신체검사나 정기 건강 검진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판막질환 혹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다가 심내막염으로 처음 임상 발현했음을 의미한다. 이 경우 심장 질환의 과거력이 없어 심내막염을 미리 의심하여 필요한 진단 과정을 거치지 못해 진단이 늦어질 위험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손바닥이나 손가락 혹은 발가락의 붉은 반점을 갖는 환자들이 거의 없고, 환자처럼 심하지 않은 미열과 전신 쇠약감만을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심내막염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염성 심내막염은 치료하지 않으면 치명적일 수 있고, 심장 조직이나 판막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히기 때문에 치료가 완료될 때까지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 원인이 되는 균주에 맞는 가장 효과적인 항생제를 선택하여 4~6주간 정맥 주사를 해야 하며, 항생제로 충분히 치료했더라도 감염이 사라지지 않는 경우, 농양이나 인공 판막의 불안정 등의 합병증이 발생하는 경우, 심한 판막 손상에 의하여 심부전증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심장 수술을 시행해야만 한다.

환자는 이미 심한 판막 손상으로 심부전증이 발생했고, 균 증식에 의한 염증의 크기가 매우 커서 머리 혈관으로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심장 수술을 함께 하였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고 이제 막 20대로 접어든 여성의 가슴 한가운데에 흉터를 남기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흉부외과와 지속적인 논의를 하고, 오른쪽 겨드랑이 밑 부분을 절개해 최소 절개, 최소 침습으로 판막을 수술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임신 등의 문제로 최대한 환자의 판막을 살리는, 승모판막을 수선하는 수술을 하기로 했는데, 주변으로 유착이 심하고 균의 증식 덩어리가 크고, 판막이 많이 손상되어 있어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판막의 역류가 소량 남게 되었다. 그러나 추가적인 시술 혹은 수술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경과관찰을 하면서 지켜보기로 했다. 어릴 적에 엄마와 헤어진 후, 아빠와 살던 환자는 큰 심장 수술도 꿋꿋이 잘 견디고, 수술 후 한 달 동안 항생제 치료를 하며, 병원 생활도 정말 잘 지내 주었다. 가끔 면회를 오시던 아버지도 딸아이만 보면 가슴이 아프다며 그래도 건강한 줄 알았는데 날벼락처럼 심장 수술이라니 딸이 너무 가여웠다 한다. 그래도 수술이 잘돼 환자도 그 아버지도 기쁜 마음으로 퇴원했다.

이후 외래를 통해 남아 있는 판막의 역류를 경과관찰 하며 별일 없이 잘 지내던 환자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했는데 이후 몇 년간 임신이 안 된다며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 시도하며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체중이 10kg 이상 급격히 늘어났고, 그로 인해 혈압이 많이 높아지게 되었다. 높은 혈압에 의해 다시 심부전 수치가 증가하고, 남아 있던 소량의 판막 역류가 점점 심해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혈압 약을 복용하게 되었는데(혈압이 높아지면 판막 역류는 심해지게 된다.) 숨도 다시 차고, 임신도 안돼 마음고생을 하던 환자를 보면서 같은 여자로서, 엄마처럼 용기를 주고 싶었다.

“현재와 같은 혈압으로는 판막 역류가 더 심해질 수 있고, 현재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되면 임신 중독증이 올 수도 있어요. 자연적으로 임신하고 자연분만하는 것들이 당연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어찌 보면 더 어려울 수 있어요. 주변에 제 환자들도 난임이 많아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면 환자의 건강도 문제가 될 수 있고, 설령 이 상태에서 임신을 해도 심부전으로 더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우선 다른 인공적인 것들은 모두 하지 말고, 좋은 음식, 제철 과일과 채소를 먹고, 가공식품을 줄이고, 짜게 먹지 말고 하루에 30분 정도는 빠른 걸음을 걷도록 해요. 그리고 마음으로 기도하세요. 인연이 되면 분명 예쁜 아이가 생길 겁니다”

환자는 남편과 꾸준히 빠른 걸음으로 걷기, 근력 운동 그리고 음식 조절을 했고, 따로 인공 수정을 위한 과배란 치료는 받지 않기로 했다. 물론 난임 가족에게 인공수정이나 시험관 시술은 필요하고, 많은 기쁨을 주지만 현재 환자에게는 자신의 건강에 먼저 초점을 맞추어야 아이도 생길 거라 판단했다. 환자는 몇 개월이 지난 후, 다시 이전과 같은 체중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판막 역류도 다시 소량으로 줄게 되었으며, 혈압약도 중단하게 된 즈음 외래에 밝은 모습으로 나타난 환자는 어제 임신 테스트를 했는데, 임신이 된 것 같다며 내일 산부인과에 가보려 한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지금 임신 5개월이 된 환자는 복용하는 약 없이, 뱃속에는 예쁜 딸아이가 크고 있다. 출산할 때까지 심장은 내가 책임지기로 했으니 좋은 생각만 하고, 가벼운 산책과 식이 요법을 철저히 하기로 약속한 환자의 뒷모습을 보면서 엄마의 마음으로 환자도 호흡곤란 없이 건강하고, 아이도 뱃속에서 잘 자라 세상에 나오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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