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 한국기술교육대 기계공학부 교수]시간 날 때마다 멀리 떨어진 시골 고향 집을 찾는 지인이 있다. 그에게 고향은 ‘나이 들수록 인간이 있어야 할 곳은 장소가 아닌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의 마음’인 듯하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그는 자동차로 가장 먼 거리라 할 수 있는 울진군 매화면에서 자랐다. 경북 울진의 매화초등학교는 1960년대 초반 베이비붐 세대 시절엔 전교생 1000명이 넘었다. 올해 100주년이 된 지금 전교생은 30명이다. 그중 다문화 가족의 자녀가 20명을 차지하고 있다. ‘웅장한 남수산 아래’로 시작하는 매화초등학교의 교가가 무색할 정도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매화면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최근 들어 울진에 살려고 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귀농도, 다문화도, 은퇴자도 아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하는 사람도 있고, 새롭게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시골 환경에 적응해야겠다는 생각보다, ‘나에게 맞는 시골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다. 학창 시절 동아리 경험, 도시의 직장 경험에서 나온 조직 생활이 도움이 되고 있다. ‘매일 오늘같이’라는 뜻이 담긴 ‘매우’라는 모임을 만들고 모임에는 토박이와 외지인의 구분이 없다. 인생을 단단하게 살아보려는 패기로 가득한 30, 40대의 모임이다. 그들은 그냥 도시를 훌쩍 떠난 ‘자연인’이 아니라 시골에서 ‘새로운 삶의 환경을 만들어 보려’는 대단한 ‘사회인’인 셈이다.
과거 매화 시장은 동쪽의 바닷가 사람과 서쪽의 화전민이 만나는 동해안에선 꽤 소문난 5일 장이었다. 장날에는 북쪽 읍내 상인들이 가져온 나일론 옷감과 남쪽 농가로부터 팔려고 나온 소들로 붐볐으나, 이제는 ‘하나로 마트’로 하나가 됐다. 문제는 수익성을 생각하다 보니 공기업 출퇴근 시간대에 맞춰 마트를 열고 있다는 점이다. 이 마을에선 퇴근 시간 이후에 두부를 찾아 헤매는 이는 처음 방문한 나그네뿐이다.
국토의 균형발전 측면에서 인구의 질적 관리는 양적 관리 못지않게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교통·통신의 발달로 도시와 시골의 연결 및 이동성이 원활해짐에 따라 주민등록지에 기반을 둔 정주인구의 의미를 넘어서는 새로운 인구개념들이 등장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올해부터 도입한 확장된 인구개념인 ‘생활인구’도 그중 하나이다. 새로운 인구 패러다임인 ‘생활인구’는 인구의 관점을 ‘등록된 거주’가 아닌 ‘라이프 패턴에 따른 머물기’에 맞춘 것으로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더라도, 여러 모습으로 지역과 관계를 맺으며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인구를 뜻한다. 행정안전부 기준에 따르면 하루 3시간 이상 머무는 횟수가 월 1회 이상인 사람을 말한다.
일본에서는 우리보다 더 확장된 개념의 인구개념을 도입한 바 있다. 바로 ‘관계인구’다. 생활인구보다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지역에 방문하지 않더라도 그 지역 출신이거나 고향 납세를 하는 사람이 여기에 해당한다.
독일을 비롯한 일부 유럽 국가에선 개인이 두 개 이상의 주소를 가질 수 있는 복수주소제가 시행되고 있다. 복수주소제는 주 거주지와 부 거주지로 구분된다. 독일에서 부 거주지의 개념은 1871년 독일제국의 성립과 함께 제정돼 현재의 ‘연방등록법’에 이르고 있다. 법률적으로 주 거주지는 거주자가 주로 사용하는 주택을, 부 거주지는 독일 내 추가적인 주택을 의미한다. 독일에서 부 거주지 등록제는 인구의 질적 관리 및 지자체의 지방세수 확보에도 도움이 된다.
확장된 인구개념은 이에 따르는 제도적 뒷받침과 정책의 변화가 뒤따라야 정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생활인구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정책 설계, 우리 사회의 부동산을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 세대구성 요건의 변화, 유연하고 자유로운 초중등 학습공간, 지역 특성에 맞춘 평생학습 인프라 등을 들 수 있다. 새로운 인구 정의는 듀얼라이프 시대를 활짝 열 것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점차 정주인구의 동반 상승도 가져올 것이다. 멋진 듀얼라이프!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