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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뉴욕에서 만난 20년 차 한 한국계 이민자의 전언이다. 포에버21은 이민자들 사이에서 단순한 패션 의류업체가 아니었다. 이민자의 성공신화, 다시 말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다.
무일푼의 20대 부부, 패션업 진출 30년만에 억만장자로
포에버21의 공동 창업자인 장도원·장진숙(사진) 부부의 이민생활은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이나 다름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명동에서 커피전문점을 하던 장씨 부부는 1981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났다.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20대 젊은 부부가 맞닥뜨린 미국 생활은 시련뿐이었다. 영어 한마디 못하는 부부는 온갖 잡일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주유소, 접시 닦기, 청소, 미용실 보조 등 미국 사회의 밑바닥을 경험했다. 하루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고급차를 몰고 온 손님이 자신을 “의류업계 종사자”라고 했단다. 그저 멋있고 부러워 보였다. 장씨 부부는 옷가게를 마음 속에 품었다.
1984년 부부는 작은 옷가게를 열었다. 악착스럽게 모은 돈으로 로스앤젤레스(LA) 시내 패션 디스트릭트 자바(Jobber)시장에 83㎡(25평) 넓이의 매장이었다. 가게 이름은 ‘패션21’. 포에버21의 모체다.
부부의 신화는 ‘동대문 스타일’의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을 접목하면서 시작됐다. ‘패션의 패’ 자도 몰랐지만, 최신 유행을 빠르게 간파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2011년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장진숙씨의 이름이 39위에 랭크됐다. 5년 후 포브스는 세계 400대 억만장자에 이들 부부를 올렸고, 표지에 사진을 실었다. 무일푼이었던 장씨 부부의 자산은 50억달러(약 6조원)를 넘어섰고, LA지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드는 부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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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격적인 매장 확장이 되레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아마존을 필두로 한 온라인 거래는 오프라인 매장을 빠르게 위협했다. 부부의 장녀인 린다 장 부회장은 “우리는 6년도 안 되는 기간에 7개국에서 47개국으로 뻗어 갔는데 그 때문에 많은 문제가 닥쳤다”고 토로했다. 컬럼비아대학 비즈니스스쿨의 마크 A.코언 교수는 “포에버21은 크기에 집중한 나머지 구매력이 약한 패션몰에 너무 많은 매장을 냈다”고 지적했다.
럭셔리 브랜드 옷들을 빠르게 리메이크해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포에버21의 특유의 전략은 저작권 문제로 이어졌다. 크고 작은 소송에 휘말렸다.
결국 포에버21은 지난달 파산보호신청을 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자회사를 포함한 포에버21의 부채는 10억∼100억달러(약 1조2000억∼12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캐나다·일본을 포함한 40개 국가에서 사업을 접었다. 미국 내 178개 점포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최대 350개 점포가 문을 닫는다. 구조조정도 이어진다. 직원의 약 20%인 1170여명을 감축한다. 포에버21의 정규직 직원은 6400여명, 시간제 근로자는 2만6400여명에 달한다.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었던 장씨 부부의 몰락은 미국 내 한인사회에서도 큰 충격이다.
한 이민자는 “장씨 부부는 많은 한국인 이민자들의 롤모델이었다. 성공한 뒤 필리핀 교육시설 건립에 340만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면서 “이렇게 허무하게 주저앉는 걸 보니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