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들이 커가면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사람은 바로 자신들의 부모일 것이다. 부모가 하는 일을 보고 배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차 그 일에 흥미를 느끼고 닮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종병원의 시작도 그러했다. 박영관 회장이 1982년 세종병원 개원하기 이전에 이미 선대인 고 박봉현 선생의 의사활동은 박 회장이 의사로서의 직업을 갖기에 충분한 가르침을 줬다.
고 박봉현 선생은 만석 꾼의 집안에서 태어나 가세가 기우는 와중 의사의 꿈을 품은 그는 대구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의사가됐다. 1942년 일본 가고시마의 와까하라 산부인과 부원장으로 부임하였고, 1년 만에 고국에서 환자들을 돌보겠다는 일념으로 귀국을 결심, 부산시 신창동에 일본인이 쓰던 병원을 인수, 자신의 호를 딴 혜원산부인과를 개원했다. 그는 ‘수분(守分), 노력(努力), 저축(貯蓄)’을 좌우명으로 삼고 환자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아버지를 보고 자란 아들이 바로 박영관 회장이다.
박 회장은 유년시절부터 아버지가 산부인과를 운영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서서히 의학에 눈을 뜨기 시작한다. 환자를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박 회장은 마음속으로 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그만큼 그가 의사가 된 것은 아버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1983년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방한 후 귀국 길에 오르며 국내 선천성심장병 어린이를 데리고 가 수술을 했던 일은 박 회장에게 있어 인생의 전환점이자 세종병원의 출발을 알리는 구심점이 됐다. 이를 계기로 심장병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오늘 날의 세종병원을 심장전문으로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세종병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박진식 병원장이다. 그는 환자를 위한 의료서비스와 질 향상을 위해 그는 늘 바쁘다. 그러면서도 진료를 계속하는 이유는 의사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고 늘 초심을 간직하기 위해서다. 이런 모습이 아버지 박 회장을 쏙 빼 닮았다.
할아버지가 척박한 의료 환경속에서 산부인과를 개원하며 의사로서의 출발을 알렸고 아버지가 국내외 선천성심장병 어린이를 도우며 심장의료기술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박 원장은 그 기틀을 토대로 국내를 넘어 해외로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으로 병원을 이끌고 있다.
100년이란 긴 세월동안 삼대에 걸친 의사의 이야기도 아직 진행중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삼대에 걸친 의사의 이야기가 있는 병원이 이제는 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삼대에 걸친 환자들이 찾는 병원이 되었다는 점이다.
어려운 이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한 아버지가 있었기에 그 아들이 의사가 되었고 그것을 보고 자란 그의 아들이 또 다시 의사가 되어 세종병원은 늘 정진하며 나아가고 있다. 삼대에 걸친 의사의 이야기는 그래서 아직 끝이 아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기에 어쩌면 4대 째 의사로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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