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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류세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비용을 마련하는 가장 손쉬운 조세 수단이다. 자동차로 발생한 대기·생활환경의 오염과 자원의 낭비를 줄이기 위한 사회적 투자가 필요하다는 명분도 훌륭하다. 유류세는 연료의 수급을 조절하는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정책 수단인 것도 사실이다.
‘은밀한 유류세 징수’…심각한 시장왜곡 현상 일으켜
하지만 유류세 20% 인하를 시행하기 직전의 휘발유 소비자 가격은 51.2%가 세금이다. 리터당 휘발유 1810원 중 746원은 유류세와 함께 부가세를 포함하고 있다. 유류세는 정액으로 부과하는 종량제이기 때문에 기름값이 싸지면 세금의 비중은 반비례해서 커진다.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500원일 때 세금 비중이 59.7%로 올라간다. 기름에 부과하는 세금은 유류세만이 아니다. 원유에 부과하는 3%의 관세도 있다. 산업부의 쌈짓돈이라고도 알려진 정체불명의 ‘석유수입부과금’도 내야 한다. 정유사와 주유소가 챙기는 휘발유의 세전 가격은 고작 리터당 883원이다. 배럴당 80달러의 두바이유 1리터의 가격이 599원이나 된다.
정유사가 유류세를 대납하는 현행 제도가 유류세의 탄력세 운영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정부가 법률에 따라 징수하는 세금을 굳이 소비자에게 감춰야 할 이유가 없다. 유류세의 은밀한 징수는 정유산업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악화하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2008년의 유류세 인하 논란은 결국 ‘기름값이 묘하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으로 이어지면서 시장을 왜곡하는 알뜰주유소가 등장했다. 2018년의 유류세 인하도 소비자의 불만 때문에 인하 기간을 3개월이나 연장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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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달성 위해 교통·에너지·환경세, 탄소세로 대체해야
유류세의 개편은 절대 미룰 수 없는 막중한 과제다. 유류세를 큰 폭으로 인하해야만 하고 휘발유와 경유에 부과하는 유류세도 같은 수준으로 조정해야 한다. 종량제의 세금을 조정해 경유 가격을 휘발유 가격의 85%로 만들겠다던 연료 소비 현대화 사업은 착각이었다.
전기차·수소차에 교통 인프라 구축 비용을 부담시키는 방안도 도움이 된다. 사실 ‘친환경’이라는 어설픈 이유만으로 전기차·수소차가 유류세로 구축한 교통 인프라에 무임승차하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합리적이지도 않은 일이다. 목적세로 징수하는 유류세의 용도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유류세는 입법 취지에 따라 반드시 교통 인프라 개선과 자동차로 발생하는 환경 문제 해결에 사용해야만 한다. 목적세를 정부의 쌈짓돈을 여기는 고약한 관행은 더는 용납할 수 없다.
유류세를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탄소중립을 추진하기 위해서 정부가 고민하고 있는 ‘탄소세’를 도입하려면 필요한 일이다. 사실 탄소세는 자동차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대책이다. 탄소중립을 위한 국제 사회의 요구이기도 하다. 탄소세를 부과하는 명분이 유류세에 포함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와 주행세는 정확하게 일치한다. 수송용 연료에 똑같은 목적의 세금을 중복해 부과할 수는 없다. 유류세의 근간인 교통·에너지·환경세를 탄소세로 대체하고 주행세는 교통 인프라 구축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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