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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갤러리카페 ‘알렉스 룸’. 작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왕가위 감독 영화에 나올 법한 레트로한 인테리어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카페이자, 젊은 시각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장이다. 이날은 원선진 작가의 전시 ‘마치 내가 거기에’가 함께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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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와 카페 등이 철공소 골목 속에 숨어 있는 게 매력적이고 새롭네요.”
20대 대학생 김미영(가명)씨의 설명이다. 특히 밤이 되면 낮에 보던 을지로와 다른 모습이 무척 좋다고 했다. 낮에는 오래된 철공소들이 모여 있는 다소 삭막한 느낌의 동네지만, 해가 지고 나면 건물 2층에 숨어 있던 카페, 갤러리들이 환한 조명으로 골목을 빛내는 이색적인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알렉스룸’에서 일하고 있는 연극배우 주민준 씨는 “홍대가 인디밴드의 ‘신’(scene, 활동 분야를 뜻하는 말)이라면, 을지로는 인디미술의 신이라 할 수 있다”며 “예술가들도 이곳을 많이 찾지만, 새로운 트렌드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도 많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주씨는 인근에 위치한 문화예술 공간인 ‘아트룸 블루’의 공동운영자이기도 하다. ‘아트룸 블루’는 ‘어른이들의 놀이터’를 표방한 공간으로 공연과 전시를 결합한 다채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주씨는 “을지로에 젊은 예술가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 이곳을 찾게 됐다”며 “복합예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해 작은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림상가 인근의 또 다른 골목길에는 엄윤나 작가의 작업실 ‘니스터(Knitster)가 있다. 엄 작가는 섬유를 재료로 공예품을 만드는 작가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아시아관, 아트 베이징, 한-필리핀 수교 60주년 기념전시 등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개인전도 개최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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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3~4가 일대는 1970년대만 해도 철공소들이 모여 있는 서울 도심의 제조업 단지였다. 조각, 공예 등을 주로 하는 시각예술가들이 작품 재료를 찾기 위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했다.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 화제가 됐던 미디어 아티스트 송호준 작가도 을지로 일대에서 재료를 구입해 작업했다.
그런 을지로가 2010년 전후로 임대료가 저렴한 작업실을 찾는 젊은 시각예술가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새로운 ‘아트 신’(art scene)을 형성하고 색다른 지역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중구문화재단은 150여 명의 예술가들이 을지로 3~4가 일대의 60여 곳 작업실에서 활동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처음엔 지역 주민들이 젊은 시각예술가들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주민들이 더 나서서 예술가들에게 안부도 묻고 작업에 도움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문화재단은 을지로 ‘아트 신’의 거점이 될 을지예술센터를 지난해 9월 을지로 4가 지역에 개관했다. 을지예술센터의 박지인 PD는 “최근 신한카드가 신진 작가·갤러리를 중심으로 한 아트페어 ‘더 프리뷰 한남’을 개최했는데 을지로 지역 공간들이 가장 많이 참여할 정도로 미술계에서도 을지로 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젊은 시각예술가들이 만들어가는 을지로 지역문화의 달라진 위상을 설명했다.
박 PD는 “빌딩 숲 사이의 낡고 오래된 골목과 건물로 이뤄진 을지로는 공간이 주는 매력도 크다”며 “개발 등으로 언젠가 사라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곳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한국 미술의 또 다른 맥락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작가는 “을지로에서 활동 중인 작가들은 실험을 무서워하지 않을 정도로 파격적인 이들도 많다”며 “지금 당장은 미술계의 메이저라고 할 수 없겠지만, 언젠가 메이저가 될 가능성을 지닌 작가들이 가득한 것은 분명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