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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2월 21일 당시 후보자 신분이던 최재형 감사원장과 우상호 청문위원장과의 대화 중 일부다.
그로부터 3년 반이 지나 최재형 감사원장은 청와대에 사표를 제출했다. ‘의지가 굳세어서 끄떡없다’는 의연(毅然)이라는 좌우명 그대로다.
최 원장은 28일 마지막 출근길에서 “감사원장직을 내려놓고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 제가 어떤 역할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 숙고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최 원장의 차기 대권 도전이 초읽기에 접어든 모습이다. 여야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렸고 청와대는 불쾌감을 숨기지 않았다.
월성 1호기 감사 놓고 여권과 신경전…정권 맞서는 강직함에 野서 러브콜
최 원장이 본격적으로 여권과 각을 세우기 시작한 계기는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타당성 감사였다.
운전허가 연장을 위해 7000억원을 들여 수리한 월성 1호기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경제성 악화를 이유로 조기 폐쇄되자 이 결정을 놓고 정치권 공방이 가열됐다. 이후 최 원장은 탈원전 옹호·반대 세력 사이에 끼어 양쪽의 공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월성 1호기 감사 결과 보고서는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경제성 평가가 “불합리하게 낮게 평가”됐지만 “이것이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절묘한 결론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최 원장과 여권의 미묘한 긴장관계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7월 청와대가 최 원장에게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현 검찰총장)을 차관급인 감사위원으로 제청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최 원장이 김 총장의 친정부 성향을 이유로 이를 거절하면서 양쪽의 관계는 더욱 불편해졌다.
최 원장의 지근거리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최 원장이 정치 참여를 고민하게 된 가장 큰 계기 역시 김 총장의 임명이었다고 한다. 이후 정권 핵심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강직한 모습에 야권에서는 최 원장에 러브콜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X파일 논란으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하락세에 놓이자 이른바 ‘플랜B’로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올 정도다.
감사원장 중립성 논란 딜레마…숙고 시간 가진 뒤 국민의힘 합류 유력
최 원장은 이날 감사원장 사임과 관련, “나의 거취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장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상황에서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중요한 감사원장직을 맡기에는 적절치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이는 동시에 최 원장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오는 말이기도 하다.
감사원의 한 관계자는 최 원장의 출근길 취재를 위해 기자들이 몰린 풍경을 보며 “감사원 70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여권은 최 원장의 행보에 맹비난을 쏟아냈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정치적 편향을 이유로 김 전 차관의 감사위원 임명을 거부했던 분이 야권의 대선후보로 나온다는 것은 내로남불”이라고 비판했다. 이광재 의원은 “탱크만 동원하지 않았지 반세기 전 군사 쿠데타와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국민의힘은 내심 반기면서도 신중한 모습이다. 이준석 대표는 “충분히 저희와 공존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서도 “대권 도전이나 국민의힘 입당에 대해 저희가 푸시하지도(밀지도) 풀하지도(당기지도) 않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미담제조기’라는 호평을 받을 정도였지만 현직 감사원장의 야권 직행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대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 원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다만 “감사원장의 임기 보장은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바람직하지 않은 선례를 만들었다”고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여야 정치권의 논란이 격화되는 가운데 최 원장의 향후 거취에 대한 말을 아꼈다. 그는 “오늘 사의를 표명하는 마당에 그런 요소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면서도 “차차 말씀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최 원장은 당분간 잠행을 이어가면서 숙고의 시간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국민의힘 대선버스 출발의 데드라인이 8월 말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국민의힘 합류 이후 차기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