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시각에 따라 사각형, 삼각형, 원으로 보일 수 있는 3차원 물체를 그려 보라.” “보기에 따라 숫자도 되고 알파벳도 되는 문자 행렬을 만들어 보라.”
뉴노멀의 새로운 경험을 거쳐 마주한 첫 강의에서 고정된 틀을 깨트리는 사고를 고민해보자는 의미였다.
우리 청년들에게 구태의연한 사고를 물려 주어선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은 것은 대통령 선거였다. 다행히 우리 청년들은 본인의 판단으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는 믿음이나, 우리 교육 현장이 얼마나 이념과 진영논리에 휘둘렸는지 새삼 돌아본다.
정권마다 한국사 교과서 근현대사 서술 편향 논란이 반복되었다. 2년 전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는 일부 교사가 학생들에게 편향적 페미니즘과 반일, 일본제품 불매 강요 등으로 학생들의 집단 반발을 초래했고, 지난해엔 또 한 교사가 천안함 장병들을 막말 모욕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심지어는 학생들의 시험에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을 예시로 은연중 진영논리를 강요하는 문제를 내기도 했다. 어느 학교 수업에서는 대선이 끝나기 무섭게 차기 정부 국정 방향을 섣불리 폄훼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나라 교육기본법 제6조는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 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 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또한 헌법에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하고,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는 원칙을 명기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이러한 원칙은 아쉽게도 지켜지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과오는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겪는 것은 아니었다. 1976년 독일의 작은 마을 ‘보이텔스바흐’에서는 좌우 진영을 포괄한 학자와 정치교육 주체들이 모여 새로운 정치교육 대원칙에 합의했다. 저 유명한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극심하게 엇갈린 독일의 분단에서 비롯된 첨예한 대립과 갈등은 공교육을 무너뜨리던 시기였다. 결국 이 협약을 통해 세 가지 원칙에 합의했다.
오늘날 독일의 시민교육을 담당하는 ‘연방정치교육센터’는 보이텔스바흐 협약에 기초해 운영하고 있으며, 현장의 교육 또한 이 원칙을 준수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갈등에 대한 부단한 숙의와 합의를 통해 성숙한다. 올해 6월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시도 교육감 선거가 실시된다. 지자체장과 달리 교육감 후보는 정당추천이 없다. 정당추천이 없는 것은 교육의 전문성을 높이고 정치색을 배제해 이념대립에서 벗어나 순수한 교육의 본질을 추구하자는 취지이다. 그러나 2006년 교육감 직선제 이후 막대한 선거비용으로 인한 부작용, 또 선거 과정에서 기존 정당의 이념과 정략을 당선에 이용하는 폐단이 적지 않았다.
디지털 경제 시대는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엘리트 중심 사회에서 집단지성, 보편적 전 국민의 스마트화 이것이 디지털 사회, 스마트 국가이다. 결국 스마트 국가로 가기 위한 첫걸음은 이념편향에서 벗어나는 교육원칙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