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15살 소녀의 멈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다

의사 한사람이 아닌 다학제 협진이 심부전 환자에겐 필요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1-07-31 오전 7:30:44

    수정 2021-07-31 오전 7:30:44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휴가였지만 밀려 있던 일들이 많아 병원에서 일을 마치고 밤 늦게 귀가를 하려는데 응급실에서 심폐 소생팀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밤도 늦었고 오늘은 원래 휴가니 무시하고 가려했지만 밤에 인력이 부족할 것 같아 싶어 살펴보게 된다. 응급실에서 심폐 소생을 받고 있던 환자는 키는 성인처럼 다 컸지만 얼굴은 딱 보기에도 너무 어린 이제 막 중 3이 된 소녀였다.

“과장님, 부정맥으로 왔는데 오자마자 심정지가 발생했어요. 이식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으니 과장님 과로 입원 시켜 주세요”. 소녀 환자의 얼굴과 밖에서 울고 계신 부모님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얼굴에 이 환자의 감별 진단이 무수히 많이 떠오른다. 결국 이식으로 갈수밖에 없겠지 생각하며 심장 초음파를 보았을 때 역시나 심장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매우 커진 소견이다.

그래도 아직 나이도 어리고 회복 가능한 다른 병들도 있으니 너무 비관적으로만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보호자께 설명 드리고 혈압이 유지되지 않고 심한 심장 기능의 저하라 에크모를 삽입하고 중환자실로 입원시켰다. 중환자실에서 하루가 지나고 환자를 재우고 있던 약제들을 중단하고 깨워본다. 의식은 또렷하고 심장 이외에 다른 장기들은 모두 정상적임을 확인한다. 에크모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을 해서 기관 삽관도 빼고 환자 의식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에크모만을 운영한다.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서 정말 순진하고 착한 눈으로 선생님 제가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을 던지는 소녀가 너무 안타깝기도 하고 어려운 치료들을 잘 견디어 주어 고맙기도 하다. 환자는 수개월전부터 목에서 개구리 볼처럼 볼록볼록 심장 박동에 맞춰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에크모는 몸 밖에서 인공 폐와 혈액 펌프로 환자의 혈액에 산소를 공급한 후 체내에 넣어주는 기기를 말한다. 심장과 폐의 기능을 대신해 주는 것으로 인공호흡기로 대처할 수 없는 심부전증, 폐부전증 환자에게 사용하게 되는데 이 환자처럼 심부전의 경우 사용하게 되면 폐 기능이 정상적일때는 기관 삽관을 제거하고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식사도 하면서 에크모를 운영할수도 있게 된다. 심장이식 대기가 길어질 경우 다른 장기가 문제가 없을 때 시도하는 방법이다.

소녀 환자의 심장은 전혀 움직일 생각이 없다. 에크모가 없다면 환자는 살수 있는 방법이 없다. 며칠을 환자 옆에서 고민하고 살펴면서 환자가 저렇게 심한 심부전을 갖게 된 원인들을 생각해 본다. 다른 장기들이 정상적이고 제대로 발육이 되었고 키는 이미 성인의 키에 도달해 있다. 심장 이외에 다른 문제들은 없기 때문에 비후성 심근병증이나 확장성 심근병증 혹은 심근염이 대표적인 감별진단이 될수 있다.

물론 갑상선 기능도 정상이었고 내분비 문제도 없었다. 심근염의 경우는 에크모로 심장을 쉬게 해 주면 호전되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저렇게 급성으로 이전에 병력이 없던 환자가 에크모를 달게 되면 일주일 정도는 지켜 보면서 심장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게 된다. 그러나 환자가 열이 난적도 없고 심근 효소수치가 크게 오르지도 않았기에 심근염의 가능성이 매우 떨어진다.

일주일을 기다려도 심장의 기능이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어 부모님과 심장 이식에 대해 상담을 했을 때, 모두 암울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이식을 하고 면역 억제제를 써야 하는데 견딜수 있을까. 자식의 아픔이 가장 크지만 이식을 하면 더 고통을 준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심장 이식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이식을 하면 환자가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지만 아무래도 처음 경험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아이에게 고통만 줄 것 만 같다.

일주일이 지나고 에크모 삽입을 한지 열흘이 지났고, 그래도 소녀는 잘 견뎌 줘 고맙기만 하다. 수일간 중환자실에서 고민하고 다학제 협진을 통해 환자를 어떻게 치료할지 머리를 맞댄다. 환자는 내원 수개월전부터 목에서 개구리 볼처럼 볼록볼록 심장 박동에 맞춘 움직임은 심실 부정맥에서 나오는 특징적인 소견이다. 아울러 심장 기능은 너무 떨어져 있지만 심전도상 심근은 어느정도 살아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환자는 심실 빈맥이 너무 자주 지나갔는데 리도케인이나 아미오다론 처럼 심실 빈맥에 사용하는 약들을 썼을 때 잠시 멈추었지만 다시 재발한다. 심전도를 유심히 살피다가 현재 심장 기능이 너무 떨어졌지만 어차피 에크모가 있으니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베라파밀이라는 약제를 사용해 본다. 심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는 오히려 더 악화만 시킬테니…. 정말 위험한 생각이었지만 역시 맞았다. 환자의 부정맥은 바로 좋아지는 것을 확인하고 환자는 특발성 심실 빈맥이 심한 확장성 심근병증으로 오인하게 만든 질환임을 진단할 수 있었다.

특발성 심실 빈맥은 심장의 보통의 전기 길이 다른 곳에 하나 더 존재 해서 그 길을 전기 소작을 하면 호전되는 병이다. 보통은 예후가 좋지만 이 환자처럼 에크모를 넣을 정도로 심하게 오는 경우는 케이스 레포트를 할 정도로 희귀하다. 즉시 부정맥 팀을 불러 에크모를 한 상태에서 전기 소작을 진행하고 수일 더 중환자실에서 안정화 시킨후 병실로 올라갔다.

6년이 지난 지금 그 소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후 모든 심기능은 정상적으로 되었고 심장을 보호하는 약도 더 이상 복용하지 않은 상태로 일년에 한번정도 검진을 하며 즐겁게 대학 생활을 하고 있다. 환자의 심기능이 호전되지 않을거라 생각하고 이식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 쯤 면역억제제를 매일마다 복용하면서 추후 임신시에도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심부전은 원인과 진단을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하는 것이 필요함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의사 한 사람의 독단이 아닌 서로 협력하고 환자를 위해 우리가 놓친 것은 없는지 서로 생각해 보고 고민을 하는 다학제 협진이 심부전에서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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