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 회장]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그동안 국내 시장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는 그대로이다.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근거는 대형마트의 성장을 방해함으로써 날로 쇠퇴하고 있는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되살릴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불행히도 규제 성과는 그 믿음에 부합되지 않는다. 2020년 1800개 전통시장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2013년 14.3%에서 2020년 9.5%까지 하락했고 대형마트의 점유율도 2015년 21.7%에서 2020년 12.8%로 급격히 떨어졌다. 사실 이런 동반 침체는 일찍이 예상된 결과로서 소상공인 어려움의 주요 원인이 대형마트가 될 수 없다는 근거가 된다.
| 안승호 숭실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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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타당성 없는 규제를 10년 이상 지속하기 위해 그동안 비상식적 증거와 주장들이 넘쳐났다. 어떤 설문조사는 영하 10도의 매서운 추위 속에도, 30도가 넘어가는 무더위에도, 최악의 미세먼지 오염 상황에서도 소비자의 30% 정도는 휴일에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과 동네슈퍼를 방문했음을 밝히고 있다. 롯데 월드 타워의 면세점과 2km 이내 전통시장과는 경쟁관계에 있다는 주장, 강화된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는데 의무휴업만이 대형마트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는 주장 등이 그 예이다. 원인이 아닌 곳에 힘을 쏟다 보니 문제 해결을 위한 규제 자체가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 확산에 신속한 대응이 필요했던 대형마트 업체로부터 성장과 혁신의 기회를 규제가 빼앗은 것이다. 대형마트에 상품을 공급했던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들이 소수라는 이유로 이들의 피해는 철저히 무시됐다. 공정을 논하자고 한다면 전통시장의 상인뿐만 아니라 이들도 보호의 대상이 돼야 한다. 대형마트의 규제 혁신은 상식과 공정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지금 규제혁신이 시급한 이유가 있다. 우선 저성장시대에서는 특정 집단을 보호하기 위해 초래되는 사회적 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겨우 연간 수백억원 수준의 중소상인 매출 증대를 위해 조 단위에 이르는 대형마트 및 공급업체의 매출을 희생했다. 1∼2%의 성장률 추세 속에서 이 같은 비용은 정부도 민간도 감내하기 어려운 규모이다. 아울러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은 지금, 가격안정은 최우선 정책적 목표가 돼야 하며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대형마트의 역할을 기대해야 한다.
대형마트 규제는 현시점에서 산업발전의 장애일 뿐이다. 옴니채널이 일반화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통합돼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물류 작업에서 대형마트 업체가 휴일에 온라인 배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과거의 해석은 이미 한물간 유산이다. 해당 업무에 해박한 부처의 공무원이나 민간 전문가가 지금 판단을 한다면 배송 금지는 그저 웃고 넘길 비상식적 요구일 것이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경제를 만드는 일의 시작은 정치색을 배제하고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한 민간의 노력을 인정하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대형마트를 포함한 대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이미 일본에서 실효성이 없어 폐기한 규제와 매우 유사하다. 일본의 경우를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더 이상의 극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행히 지난해 12월 대형마트, 중소유통업체 단체와 함께‘대·중소유통 상생발전을 위한 협약을 맺어 “대형마트 등의 영업제한시간·의무휴업일에도 온라인 배송(통신 판매)이 허용될 수 있도록 공동노력한다”는 내용과 함께 의무휴업일의 요일도 지방자치단체별로 자율적으로 지정할 수 있는 방안을 협의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관련 법안은 이미 국회에 발의됐으나 일부 소상공인단체와 정치인들의 반대로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모처럼 합의까지 이룬 그간의 성과가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이해당사자가 희망하고 있다는 큰 변화가 있는데도 10년간 변하지 않은 것은 소수의 지방 이익단체에 휘둘리는 국회의원들의 아리송한 입장이다. 조속한 법 개정을 통해 침체돼 가고 있는 대형마트가 성장모멘텀을 되찾고 상생사업을 통해 소상공인들도 같이 성장할 기회가 빨리 주어지기를 촉구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