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위조증권 막을 해법 IT에서 찾아라

  • 등록 2015-04-17 오전 3:00:01

    수정 2015-04-17 오전 3:00:01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최근 한 미디어회사의 실물주권이 정교하게 위조돼 대출 담보로 악용된 사건이 발생했다. 개인간 자금거래에 위조주권이 담보물로 사용된 사례인 셈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이러한 위조사례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예탁결제원 통계에 의하면 2000년대 초반까지 횡횡했던 주권위조사건이 한동안 잠잠했지만 2012년 이후 다시 발생빈도수가 늘어나는 추세다.

종이위 인쇄물에 재산적 가치를 부여한 유가증권의 발명은 금융산업 발전에 중요한 사건이다. 인류는 기원전 약 3000년경부터 파피루스를 이용해 기록을 남기고 인쇄물을 의사전달에 활용해왔다. 그러한 인쇄물에 재산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을 알기까지에는 그로부터 4000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 요즘 인쇄된 종이에 재산적 가치나 권리를 부여할 수 있다는 인식이 널리 보편화되어 있지만(예를 들어 우리가 쓰는 지폐를 생각해보라) 10세기 전만해도 이러한 생각은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혁명적 개념이었다. 종이쪽지와 금화(金貨)를 동일시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역을 통해 상업이 발달하면서 인쇄된 유가증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점차 커졌으며 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유가증권이 권리행사 방식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됐다.

종이로 인쇄된 유가증권의 개발과 활용은 금융산업을 혁신적으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됐지만 여기에는 고질적으로 따라붙는 병폐가 있다. 분실·훼손 및 위조 위험성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위조의 경우 그 악의성에 따른 재산피해 규모가 큰 사례가 많고 금융산업 발전의 근간이 되는 시장신뢰구축에서 중대한 저해요인이 되기 때문에 발생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시킬 필요가 있다.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한 대다수 국가들은 분실·훼손 위험을 막고 관리하기 편하도록 유가증권의 부동(不動)화와 무권(無券)화를 추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분실이나 훼손 위험은 크게 줄었지만 위조사건은 근절되지 못했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이후 IT기술이 급진전하면서 유가증권 발행방식에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종이가 아니라 전자적 장부에 등록해 발행하는 전자증권의 출현이 그것이다.

전자증권의 출현은 유가증권 발행과 유통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꿨다. 증권위조 위험성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편의성과 안전성이라는 장점 때문에 전자증권은 실물증권을 빠르게 대체했으며 현재 많은 국가에서 유가증권 발행방식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인쇄된 종이에 재산적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4000년이 훌쩍 넘어가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던 반면 종이를 치워버리는 데에는 불과 20년이 걸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전자증권의 효용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강국이다. 금융시장 성숙수준도 높다. 이는 우리 금융시장이 전자증권 도입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음을 뜻한다. 유가증권 발행의 상당 부분이 이미 전자적 방식을 통해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금융시장에는 아직 전면적인 전자증권제도 시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위조 위험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고 실물증권 관리에 소요되는 적지 않은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전자증권제도의 조속한 도입이 절실하다. 이웃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대다수 금융선진국들이 전자증권방식으로 유가증권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 재산을 안정적으로 보호하고 금융시장의 신뢰기반을 다지기 위해 국회와 정부가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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