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식의 심장토크]암보다 더 무서운, '대동맥 판막 협착증'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
  • 등록 2020-12-06 오전 7:59:21

    수정 2020-12-06 오전 7:59:21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 암을 진단 받고 나서 적절한 치료를 받는다고 해도 5년동안 생존할 확률이 높지는 않다. 이를 5년 생존율이라고 하는데, 위암 76%, 대장암 76%, 간암 35%, 폐암28%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암을 두려워 한다. 그런데 심장병 중에서 이런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 있다.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다. 대동맥 판막의 심한 협착으로 흉통, 호흡곤란, 실신과 같은 증상이 발생한 경우, 2년 생존률 50%, 5년 생존률은 20%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박진식 세종병원 그룹 이사장
심장이 수축해서 혈액을 짜 내주면, 대동맥 판막은 혈액이 지나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문을 활짝 열어준다. 심장이 수축하는 한정된 시간 내에 몸에서 필요한 정도의 혈액이 대동맥 판막을 통과해야하기 때문에 혈액들은 속도를 내서 대동맥 판막을 통과한다. 정상적인 경우 그 속도는 초속 1m를 넘지 않는다. 그런데 판막이 문을 활짝 열어주지 못하는 판막 협착증이 발생하면, 혈액이 더 속도를 내야 심장이 수축하는 정해진 시간 내에 같은 양의 혈액이 대동맥으로 갈 수가 있다.

대동맥 판막이 심하게 협착이 있는 경우, 혈액의 속도가 초속 4m이상이 되어야, 심장이 수축하는 시간동안 몸에서 필요로 하는 혈액이 대동맥으로 넘어갈 수가 있다. 혈액이 이런 속도를 내려면 심장에서 더 높은 압력으로 혈액을 밀어주어야 하는데, 초속 4m의 속도로 좌심실에서 대동맥으로 혈액을 이동시키려면, 좌심실은 대동맥 보다 64mmHg이상 높은 압력을 발생시켜야 한다.

정상적인 심장은 대동맥의 압력보다 4mmHg정도만 더 높은 압력을 내면 몸에 필요한 혈액을 공급할 수 있는데, 심한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있는 경우 64 mmHg, 심한 경우 100mmHg이상 더 높여야 몸에 필요한 혈액을 공급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수축기 혈압이 140mmHg보다 높으면 고혈압이라고 부르고, 방치하는 경우 심장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투약해서 혈압을 낮추기를 권유한다. 그런데, 심한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 있는 경우 동맥의 수축기 혈압은 120mmHg으로 정상이라고 이라고 하더라도, 수축기 동안 좌심실의 압력은 184mmHg이상, 심한경우 220mmHg이상이 된다는 의미이다. 심장이 이렇게 큰 부담을 받고 있기 때문에, 무리하던 심장근육이 갑작스럽게 지쳐버려서 기능을 잃어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심한 판막 협착증이 있는 경우 혈액이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심장에서 소리가 나게 된다. 입으로 바람을 불때 살살 불면 바람이 나가는 소리가 안 나지만, 세게 불면 ‘후-욱’하는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장에서 ‘후-욱’하는 소리가 난다. 소리가 매우 작아서 그냥 귀로 들어서는 들리지 않고, 청진기를 이용해서 들을 수 있다. 의사들은 심장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소리가 나는 것을 가지고 심장판막증과 같은 병을 의심하게 되고,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 심장 초음파 검사 등을 시행한다.

고혈압을 침묵의 살인자라고 부르는 것 처럼, 대동맥 판막 협착증도 심한 협착증 상태가 상당한 기간 지속되기 전까지는 특별한 자각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일단 자각증상(흉통, 호흡곤란, 실신)을 느낄 정도라면, 심장이 이미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이 상태에서 2년 생존율 50%, 5년 생존률은 20% 밖에 되지 않는 점을 고려해서 빠른 시간 내에 치료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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