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재 교수 "기업가정신 꽃 피우려면…양벌제 없애야"

[만났습니다]①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벤처투자 7조 돌파 등 문재인 정부 벤처 정책 '긍정적'
반면 최저임금·중대재해법 등 노동정책 기업가 '발목'
기업·기업가 함께 처벌 '양벌제' 기업가정신 갉아먹어
"양벌제개혁특별위원회 만들어 불합리한 법 제도 없애...
  • 등록 2022-04-25 오전 5:30:00

    수정 2022-04-25 오후 3:40:40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가 서울대 ‘박희재 창의공간’에서 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강경래 기자] “양벌제를 폐지해야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꽃필 수 있습니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최고경영자(CEO)가 되면 200개 이상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특히 우리나라만큼 기업과 함께 기업가를 처벌하는 양벌제가 많은 나라는 없다. 이로 인해 기업인들은 하루하루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이라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양벌제개혁특별위원회’(가칭)를 만들어 양벌제에 해당하는 법을 순차적으로 없애줬으면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박 교수는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벤처 육성 정책은 긍정적이었다고 본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반드시 계승해야 할 것”이라며 “반대로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근무제, 중대재해처벌법 등 기업 활동을 옥죄는 급진정책들은 반드시 수정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1998년 서울대 실험실 1호 벤처기업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창업한 우리나라 1호 ‘교수 기업가’다. 에스엔유프리시젼은 디스플레이 검사장비 분야에서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박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단장(차관급)을 비롯해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과 포스코 사외이사 등을 맡고 있다.

기업가와 함께 정부 관료, 교수 등을 두루 경험한 우리나라 ‘산업계 석학’ 박 교수를 22일 서울대 ‘박희재 창업공간’에서 만나 윤석열 정부에서 기업과 산업 발전을 위해 추진해야 할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곳 이름이 ‘박희재 창업공간’이다. 어떤 곳인지 설명해주신다면

▷에스엔유프리시젼을 창업하고 어느 정도 성장시킨 뒤 2005년에는 코스닥 상장을 이뤘다. 상장하는 과정에서 보유 주식 중 일부를 서울대에 기증했다. 주식 가치는 당시 80억원 수준이었다. 서울대는 이를 장학금, 연구비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던 중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키운 과정을 학생들과 공유하고 지원하는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이 받아들여져 서울대 공과대학과 기계공학부에서 지난해 3월 ‘박희재 창업공간’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최대 10개 예비 스타트업이 활동할 수 있다. 3D(3차원) 프린터 등을 통해 학생들이 설계한 제품을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 또한 글로벌 창업과 산학협력을 할 수 있는 비대면 글로벌 회의공간과 아울러 네트워킹을 위한 공간, 휴식과 음료 등을 위한 카페 등 부대시설도 있다.

-기업을 창업하고 경영해본 입장에서 지난 5년 문재인 정부 정책을 평가하신다면

▷문재인 정부 하에 벤처 육성 정책이 빛을 발했다. 특히 지난해 벤처투자 7조원 돌파는 큰 의미가 있다. 정부는 모태펀드와 민간펀드를 매칭하고 엔젤투자가 활발히 일어나도록 했다. 그 결과 지난 5년 동안 창업 열기가 뜨거웠다. 이렇듯 벤처생태계가 활성화하는 데 있어 정부가 큰 역할을 했다. 통상 정부가 바뀌면 잘해온 정책도 위축하기 마련인데, 벤처 육성 정책은 윤석열 정부에서도 이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차등의결권 도입 등이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반면 주52시간제 등 급진적인 노동정책으로 인해 기업들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최저임금제와 주52시간제, 중대재해법 등 소위 ‘3법’이 기업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친노동 정책을 펼쳤다. 기업가와 노동자를 분리해서 보는 접근을 하다 보니 기업가는 일방적인 규제 대상이었다. 기업가가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을 반영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급진적으로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기업 현장에선 중대재해법 때문에 서로 CEO를 맡지 않으려는 일까지 벌어진다. 기업가정신이 크게 위축한 것이다. 이런 법은 분명 대기업을 규제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가 돼 있는데 반해 영세한 중소벤처기업은 사실상 무방비 상태이기에 더욱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도 기업가 발목을 잡는다. 이러한 법들에 대한 개정 혹은 완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등 장관 후보자 발표가 이어졌다. 산업계에선 현장을 잘 아는 기업가가 포함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하는데

▷장관을 비롯한 행정가가 산업 현장을 잘 알고 이를 정책에 반영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늘 안타깝다. 기업가들을 만나보면 백지신탁제 지적을 많이 한다. 백지신탁은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이어서 주식과 채권 등 거의 모든 자본 활동이 범주에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결국 현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들로 (장관 등) 자리가 채워진다. 일각에선 백지신탁이 공무원과 정치인이 기업가를 진입하지 못하게 만든 허들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에도 백지신탁제가 있지만 강제조항이 아니고 자율적으로 이행한다. 목숨을 걸고 기업을 운영하며 얻은 기업가들의 귀한 경험이 국가와 경제, 산업 발전에 쓰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차기 정부가 백지신탁을 꼭 들여다봤으면 한다.

-나아가 법인세·상속세 최고세율 인하 등을 산업계가 요구한다. 기업 활동하기 더 나은 여건을 만들기 위해 추가로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우리나라 법인세·상속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 수준이다. 이는 기업가들에 있어 매우 큰 걸림돌이다. 기업가 정신을 주저앉히는 부정적인 요소다. 정부는 기업가 역시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대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업가가 없으면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으면 국가 경제가 발전할 수 없다. 법인세·상속세 등 세율 인하가 대폭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기업가와 기업을 함께 처벌하는 양벌제가 많은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거의 없다. 기업 활동을 하다 잘못해서 기업이 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와 동시에 기업가가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앞서 언급한 3법도 양벌제에 해당한다. 요즘 기업가들을 만나보면 ‘교도소 담장을 걷는 것과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CEO가 되면 200개 이상 법적인 제재를 받는다. 이는 외국기업인 조차도 한국법인 대표로 취임하는 것을 주저할 정도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상당히 거리가 먼 것이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혹은 차기 정부가 양벌제개혁특별위원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양벌제를 폐지 또는 축소해야 진정한 기업가정신이 꽃필 수 있다.

-최근 원자재 수급난과 물류난 등 글로벌 공급망 문제가 벌어진다. 정부가 어떻게 풀어내야 할까.

▷가뜩이나 심각했던 원자재 수급난을 포함한 글로벌 공급망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더욱 악화하는 상황이다. 이는 ‘바잉파워’와 함께 글로벌 네트워크, 조직, 규모 등을 갖춘 대기업도 풀기가 쉽지 않다. 하물며 상대적으로 여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은 아예 대책이 없다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 생태계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다행히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 등은 세계 각지에 글로벌 네트워크를 보유하고 있다. 포스코인터내셔널, 삼성물산 등 우리나라 종합상사 역시 글로벌 네트워크가 있다. 정부는 코트라, 종합상사, 중소벤처기업이 함께 원자재 수급 다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이슈를 풀어낼 수 있도록 공동 프로젝트를 만들고 지원해야 한다.

박 교수는…

△경기 김포 출생 △우신고·서울대 기계설계학과 △영국 맨체스터대 기계공학박사 △포스텍 산업공학과 조교수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 △에스엔유프리시젼 대표이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 단장 △청년희망재단 이사장 △한국산업기술보호협회 회장 △포스코 사외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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