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황병서 기자] “대화경찰관의 일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닙니다.”
강석진(36) 서울 서초경찰서 정보안보외사과 경위는 지난달 23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비정규직 노동단체의 대법원 앞 야간문화제를 경찰이 강제 해산한 이후의 상황을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 강석진(36) 서울서초경찰서 대화경찰관(경위)(사진=황병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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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시위 현장에는 강 경위와 같은 ‘대화경찰관’이 있다. 과거 정보경찰이 시위대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역할에 주안점을 뒀다면 대화경찰관은 집회 현장에서 시위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갈등을 최소화해 평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쓴다.
강 경위는 “노조원이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과정에서도 어느 경찰서로 인계되는지 안내하고, 연행된 노조원 면회 일정을 조율해주는 등 노조 측과 소통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고 당시 대화경찰관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했다.
경찰은 최근 비정규직 노조가 주장한 야간문화제를 미신고 불법집회로 판단, 강제 해산 조치했다. 그간 노조 측과 소통해온 강 경위는 “노조를 찾아가 입장을 들어보고 법에 저촉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알리며 갈등을 완화하려 했다”며 “안내에도 노숙 집회를 강행하니까 현장 경찰 입장에선 공익에 대한 침해를 두고 볼 수 없었던 것 같다”고 양측간 소통채널이 막힌 점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강제 해산 이후라도 대화경찰관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니다. 감정이 격해진 현장 분위기를 다독이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지난 5월25일 경찰의 강제 해산 이후 노조원 20~30명이 인근 사유지에서 무단으로 노숙 농성을 강행하면서 갈등이 또 이어졌다. 이에 강 경위는 “빌딩 관리인에게 먼저 다가가 노조원들이 노숙할 수 있도록 양해를 구했고, 오전 6시까지 일어나 출근길 직장인들과 겹치지 않게 한다면 된다는 조건을 얻어냈다”고 전했다. 이에 노조 측도 중재에 나선 대화경찰관의 제의를 받아들여 다음날 오전 5시 기상해 자리를 뜨며 추가 충돌 없이 집회는 마무리됐다.
| 강석진(36) 서울서초경찰서 대화경찰관(경위)(사진=황병서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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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101경비단으로 입직해 올해 12년 차에 접어든 강 경위는 서초동의 ‘법조타운’이라고 불리는 구역에서 일어나는 집회에서 갈등 중재를 도맡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 이후 집회 신고가 늘면서 대화경찰관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강 경위는 “집회 주최 측에서도 대화경찰관이랑 이야기를 하면 갈등의 매듭이 풀려간다는 것을 느껴서인지 요청이 많아졌다”고 전했다.
법 테두리 안에서 갈등을 중재할 수밖에 없어 한계를 느끼기도 하지만, 집회 과정에서 끈끈한 사이로 발전한 관계도 있어 보람으로 여기고 있다.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집회 분위기가 격양된 가운데 강 경위는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1년 넘게 집회를 벌였던 ‘정인이를 찾는 사람들’ 회원들에겐 법보다는 마음으로 이해하고 달래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가갔다고 전했다. 그는 “어머니들이 땡볕에서 삭발식을 진행할 때 같이 있고, 추울 때 따뜻한 차를 서로 주고받으며 유대를 쌓았다”며 “나중엔 자선 바자회에 초청해주셔서 기꺼이 가서 도와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노력에 강 경위는 경찰청이 개최한 ‘2023 상반기 대화경찰관’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갈등이 심한 집회 이후에 나중에라도 고맙다는 말을 들으면 피곤함이 가신다”며 “대화경찰관으로서 집회 현장에서 최대한 불법 없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합의점을 만들어 내는 창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