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 베네치아에서 다시 배우는 중기 육성책

  • 등록 2015-05-18 오전 3:01:01

    수정 2015-05-18 오전 3:01:01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최근 저성장과 저금리의 고착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을 주요20개국(G20)과 비교하면 2011년부터 줄곧 G20 평균치를 밑돌고 있다. 우리 경제성장률이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를 제외하면 항상 G20 평균성장률보다 높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저성장 기조는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다.

저성장 기조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중소·벤처기업 성장이 중요하다. 우리가 중소기업 육성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정부 역할만큼 중요한 것은 시장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이다. 자금과 인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이 중소·벤처기업을 경쟁관계로 인식하느냐 또는 보완관계로 보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경제 발전의 화두였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인 고대와 중세부터 이미 대(大)상인과 중소상인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기업(또는 대상인)은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중소기업을 밀어낸 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번영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은 국가경제의 유연성을 떨어뜨렸고 외부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세 유럽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베네치아 상인들의 기업관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세계적 문호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베네치아는 이탈리아 반도 북단 해안가에 있는 작지만 매우 강력한 도시국가였다. 물의 도시로 잘 알려진 것 처럼 베네치아는 안전한 수상근거지의 건설과 항해술의 개발을 통해 유럽 최고 무역국가중 하나로 활약했다. 베네치아가 서로마제국이 붕괴한 후에도 약 1000년간 번영을 이어가며 무역중심국으로 활약할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는 정부의 일관된 중소상인 육성정책이다.

베네치아 정부는 민간 상인들의 무역활동을 지원하는 각종 정책을 시행했는데 특히 대상인의 폭주를 막고 중소상인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세심히 추진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 베네치아 정부가 대상인들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지만 중소상인 육성책 추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베네치아 대상인들이 중소상인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봤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대상인들은 베네치아가 유연성과 다양성을 갖춘 무역국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파이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보고 중소상인 보호정책을 수용했다. 이는 당장 눈 앞의 이익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성까지 생각한 베니스 대상인들의 지혜다. 지금 우리경제에 필요한 기업관(觀)은 바로 이런 것이다.

중소·벤처기업은 시장환경 변화에 조직 체계와 사업 방향을 기민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유연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대기업에 우위를 지닌다.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경쟁환경이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경제가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해 경제구조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대기업들도 중소기업을 보완적 관계로 여기고 중소기업이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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