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기조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중소·벤처기업 성장이 중요하다. 우리가 중소기업 육성책에 관심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정부 역할만큼 중요한 것은 시장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기업이다. 자금과 인력을 가지고 있는 대기업들이 중소·벤처기업을 경쟁관계로 인식하느냐 또는 보완관계로 보느냐에 따라 시장 판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경제 발전의 화두였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인 고대와 중세부터 이미 대(大)상인과 중소상인 사이의 갈등이 존재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대기업(또는 대상인)은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중소기업을 밀어낸 후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번영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았다. 대기업에 의한 경제력 집중은 국가경제의 유연성을 떨어뜨렸고 외부 환경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순발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베네치아 정부는 민간 상인들의 무역활동을 지원하는 각종 정책을 시행했는데 특히 대상인의 폭주를 막고 중소상인 기반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세심히 추진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부분은 당시 베네치아 정부가 대상인들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었지만 중소상인 육성책 추진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는 베네치아 대상인들이 중소상인들을 어떠한 관점에서 봤는 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중소·벤처기업은 시장환경 변화에 조직 체계와 사업 방향을 기민하게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유연성과 다양성 측면에서 대기업에 우위를 지닌다.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개발되고 경쟁환경이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경제가 버텨나가기 위해서는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해 경제구조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대기업들도 중소기업을 보완적 관계로 여기고 중소기업이 경제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