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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가 관리하는 주차장은 주택가 인근의 경사로에 있었지만, 주의 표지판과 고임목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주차장엔 승용차와 승합차가 총 31대 주차돼 있었지만, 차량 바퀴에 고임목이 고정된 차량은 단 한대도 없다.
경기 과천의 한 놀이공원 주차장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차량에 치여 숨진 아동의 이름을 딴 ‘하준이법’이 시행된 지 지난 25일부로 3년이 됐지만, 이처럼 경사로에서 고임목 없이 주차하는 경우가 여전했다.
“경찰도 단속 근거 부족”
문제는 이 법에 명시된 ‘경사진 주차장’이란 정의가 모호하고 고임목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경찰은 단속할 근거가 부족하고, 주차장 주인·운전자들은 법망을 피해 갈 요소가 다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처음 입법할 때부터 상징적 의미가 있을 뿐이지 법 자체는 유명무실해졌다”라며 “법 내용이 뚜렷하지 않아 경찰도 단속할 근거가 부족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울기가 1~2도만 돼도 경사라고 할 수 있는데 법에는 구체적인 수치조차 없다”며 “고임목의 경우도 종류·형태·개수 등에 대해서 어떻게 적용하고 규정할지 논의하지 않은 채 법이 통과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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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미끄러짐 사고의 경우 사이드 브레이크를 잘 채웠다고 해도 차량의 연식이 오래됐다면 브레이크 마모로 미끄러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고임목을 두는 게 맞으며, 바퀴 양쪽에 설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작구 주민인 김모(76)씨는 “요즘 차는 몰라도 오래된 차는 여전히 미끄러져 내려갈 가능성이 높은데 쇠사슬이 녹슬어 있는 것은 빨리 교체해야 한다”며 “주차 자리 한 곳당 고임목이 한 개뿐인데 두 개로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장치 없이 비탈진 곳에 주차된 차를 보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주민 몫이다. 강남 유료주차장 인근 주민 이모(26)씨는 “이 지역은 좁은 골목길이 많아 차가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 매번 위험하다고 느낀다”며 “특히 나처럼 전동 킥보드를 자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런 주차장을 지날 때면 차가 언제 미끄러져 내려올지 몰라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