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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변월룡이 남다른 것은 그가 연해주에서 태어난 고려인이었다는 점이다. 특히 변월룡은 러시아 최대 미술대학인 상트페테르부르크 레핀 회화·조각·건축 예술대학을 입학해 수석으로 졸업한 천재로, 소비에트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작가였으나 북한에서 끝내 숙청돼 다시 고국을 밟지 못했다.
2016년 한 미술평론가의 노력으로 덕수궁 미술관에서 처음 열린 전시는 국내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의 예술적 탁월성을 알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지난달 17일부터 학고재 갤러리에서 진행되고 있는 ‘우리가 되찾은 천재 화가 변월룡’ 전(5월19일까지) 역시 마찬가지다.
덕수궁 미술관을 통해 처음 진행된 변월룡의 전시에서 눈에 띄었던 것은 사회주의 리얼리즘(Socialist Realism) 작가가 아니라 보편적인 예술가로서 변월룡의 작품에 다가가자는 기획자의 호소였다. 곳곳의 설명에 사회주의 리얼리즘 특유의 도식성보다 작가의 개성적인 표현을 발견해달라는 당부가 발견됐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래서 변월룡을 있는 그대로 보자는 요청은 의식적 구호를 넘어 실제 그의 작품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그의 전시는 한 소비에트 예술가가 정치적 목적성에 매몰된 것 이상의 예술 세계를 어떻게 전개할 수 있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변월룡이 그린 노동자 초상엔 하나같이 주인공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선전의 주인공으로 삼기 앞서 한 인간으로서 대상을 존중하는 작가의 태도가 거기서 드러난다. 항구에서 일하며 여유 있게 웃어 보이는 고려인 여성 ‘한슈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조금 과장되게 크게 그려진 그의 초상 앞에선 누구라도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경외감은 우리가 으레 떠올리는 개인적 성취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작가는 평범한 노동자를 영웅으로 추어올리는 사회주의적 신념을 형상화하는 동시에, 그러한 정치적 목적에도 사라지지 않는 인간존재의 숭고함을 되새길 것을 이 그림을 통해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사회주의 예술이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 이유는 바로 이런 데 있다. 교조적이라는 이유로 흔히 기각되는 예술의 당파성이 이들이 그려낸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 말이다. 오히려 그들은 이 정치적 색채의 여백 안에 현대미술에서 흔히 기각되는 휴머니즘을 새겨넣는 데 성공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단색의 사각형 하나로 표현상의 혁명이 정치적 혁명을 대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그의 절대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소비에트 예술을 그저 조야한 선전미술로 묘사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도처에 있다. 선이 두텁고 부드러움에도 인물들의 동세 또한 잘 살아있어 현대적인 감각마저 발견되는 초상화부터, 경이로운 수준의 세밀함이 돋보이는 동판화들까지, 변월룡이 그려낸 작품들 역시 그같은 증명의 명징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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