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전과 살아가기]이제껏 병 하나 없이 살아왔는데… 심부전이라니?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 등록 2022-02-12 오전 12:03:57

    수정 2022-02-12 오전 12:03:57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서울 근교에서 과수원을 운영하며 지내던 58세 남성 환자는 평소 건강에는 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해 병원은 찾은 바 없고, 감기도 잘 걸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분이다. 술, 담배를 즐기고, 자신이 하는 농사일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이제껏 정말 열심히 살아왔다. 가끔 혈압을 재 보았을 때, 수축기 혈압이 140 mmHg 내외였지만 크게 높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증상도 없으니 굳이 병원을 방문한 적도 없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
그런 분이 나에게 방문하기 한 달 전부터 일할 때마다 약간씩 호흡곤란이 생겼고, 가슴도 약간 묵직한 느낌을 받았으나 과식하면 심해지는 것 같아 음식 때문이겠거니 생각했고, 며칠 지나니 좀 좋아지는 것 같아 지켜보았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밤에 답답한 증상 때문에 잠에서 깨는 일들이 생기고, 조금만 일을 해도 호흡곤란이 생겨 아내의 손에 이끌려 타 병원을 방문했다가 심장이 크고, 심전도에 이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원을 방문했다.

환자의 수축기 혈압은 150mmHg 정도로 다소 높았고, 폐 청진상 폐부종이 의심되었으며, 심장 청진상에서 심잡음이 들렸다. 심전도상 심장을 먹여 살리는 혈관인 관상동맥의 허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때, 급성관동맥증후군(관상동맥 혈관 내에 급성으로 생긴 크고 작은 혈전으로 인해 혈관이 심하게 폐쇄되어 심장에 혈류 공급이 부족해지는 질환)은 아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만성허혈질환과 동반된 2차적인 심장 판막 질환에 의한 심부전으로 판단되었다.

역시나 심장 초음파를 시행했을 때 심장의 기능은 떨어져 있었고, 관상동맥질환이 의심되는 부분들에 이미 경색이 진행돼 있었다. 이로 인해 판막이 끌려가면서 제대로 닫히지 않아 승모판 폐쇄부전이 심하게 발생해 심부전이 발생하고, 호흡곤란이 발생했던 것이다. 아울러 판막이 과거에 류마티스열을 앓고 지나가 판막과 그 판막을 지지하는 끈들이 많이 두껍게 변형돼 있었다. 관상동맥조영술을 시행했을 때, 심장을 먹여 살리는 혈관 2개가(관상동맥은 크게 3개로 구성되어 있다.) 완전히 막혀 다른 혈관 하나가 겨우 살아서 막힌 혈관 주변으로 발달하여 피를 공급해 주고 있었다.

아직 심장의 근육이 모두 섬유화가 된 것이 아니어서 혈관의 재관류 요법이 수술이나 시술로 필요한 상태였다. 수술은 가슴뼈를 열고, 막힌 관상동맥을 다른 혈관(주로 내흉동맥 혹은 다리 정맥)을 이용해 우회로를 만들어 혈류를 회복시켜 주는 것이고, 시술은 주로 대퇴동맥 혹은 손목 동맥을 이용하여 심장까지 관을 삽입해 막힌 혈관에 스텐트를 넣고 나오는 방법이다. 관상동맥질환에 의해 심장의 근육이 수축하지 않으면 이차적으로 승모판막 폐쇄부전이 나타날 수 있어 이 경우는 관상동맥질환을 먼저 해결하고 약물을 사용하면서 지켜보기도 하므로 단순히 시술과 약물 치료로 진행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환자의 경우는 두 개의 큰 혈관이 막혀 시술에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이 되기도 했고, 과거에 류마티열을 앓고 그로 인한 이차적인 판막의 손상이 이미 진행하였고, 좌심방도 매우 큰 상태로 승모판막은 치환을 해주는 것이 환자의 장기 예후에 좋을 것으로 판단이 되어 관상동맥우회술과 승모판막치환술을 함께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관상동맥 만성 완전 폐색은 반복된 혈관 손상과 회복에 의한 폐쇄가 서서히 진행되어 가는 것으로 스텐트 치료법은 기구나 재료의 발전과 시술 의사들의 숙련도가 높아지면서 성공률과 합병증 모두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단순 협심증에 비해 시술 난도가 높고, 합병증 발생의 위험과 비용도 높다. 환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급성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어서 급사하거나 수일 내로 급격한 증상의 발생이 생기지는 않았던 경우였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현재의 상태를 설명하고 약물을 사용하면서 수술 날짜를 잡도록 설명을 드리니 환자가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하신다. 나는 이제껏 병 하나 없이 잘 살아왔는데 왜 갑자기 수술이냐고… 심장 수술은 가슴을 열고 하는 매우 위험한 수술이니 수술방에 들어가서 내가 못 나오는 것 아니냐며 절대 수술은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으니 증상도 너무 좋아져서 굳이 수술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환자는 입원 기간 중 심부전 약물을 사용하면서 호흡곤란은 거의 사라졌고, 흉통이나 답답함도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그리고 머리로 가는 혈관도 동맥경화로 좁아져 있어 수술 후 뇌경색이 발생할 확률도 높았으며, 관상동맥과 판막 수술을 모두 시행해야 하므로 수술 시간도 좀 더 걸리게 되어 합병증의 발생도 일반 수술보다 높을 수 있었다.

심장내과, 심부전 전문의로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나는 병 하나 없었는데 왜 심부전이냐, 왜 수술을 해야 하냐, 이 약은 한번 먹으면 평생 먹어야 하는 것이냐, 혈압약, 당뇨약을 평생 먹어야 하느냐 등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오랫동안 환자를 보는 입장에서 의학적 지식이 부족할 때, 혹은 잘못된 정보에 노출될 때, 그런 생각들을 많이 하시게 되는 것 같아서 환자분들께는 천천히 현재의 상태와 약을 드시지 않을 때, 혹은 수술을 하지 않을 때 일어나는 문제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수긍하도록 하는 편이다.

이전에 내가 전공의 시절의 일이다. 당직이 많고, 환자를 보고 연구하는 것 이외에 일상생활은 거의 할 수 없었는데, 어느 날 출근을 하려고 차를 탔는데 주차장을 나서자마자 갑자기 차에서 ‘펑’하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주저앉아 버렸다. 한쪽 타이어가 오래 써서 마모가 되어 터져 버린 것이었다. 바쁜 와중이라 차를 이용하는 경우도 적었고, 관심도 부족했기 때문에 타이어가 오래되면 마모되고, 바꾸어 주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없었던 것이었다. 고속도로에서 펑크가 났다면 정말 위험했을 상황이었다. 내 차는 한 번도 사고도 안 나고, 정비소를 다녀 본 적도 없다 그런데 저런 일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속상한지… 라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당황해할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닌가 오래 쓰면 마모되고, 교체해야 하고 더 오래 쓰면 차도 바꾸어야 하고… 관리를 잘하고, 자주 정비소에 가서 고쳐주고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한데, 차에 무지하고, 시간도 부족하였던 나는 정비소 한번 안 간채 내 목숨을 담보로 차를 운전하고 있던 셈이었다. 응급으로 터진 곳을 메우고, 바퀴에 바람을 넣고 출근을 했지만 그 상태로 당연히 오래가지 못한다. 차가 움직이고 증상이 없으니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타이어를 바꾸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환자도 마찬가지다. 미리미리 병원에서 검진을 받고, 혈압이 높으면 조절하고, 흡연을 자제했다면 지금처럼 혈관들이 망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심부전 증상은 약물로 잠시 조절이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혈관과 판막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 다시 증상이 재발할 테니 수술적 요법으로 교정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나는 병원에 한 번도 간 적도 없는데… 병 한번 걸린 적 없는데…라는 생각은 어찌 보면 위험한 일이다. 나이가 들면 세포 기능도 떨어지고, 몸에 문제들이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고, 요즘 같은 때에는 환경 호르몬이나 미세먼지, 바이러스 등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 몸을 공격하기도 한다. 너무 과도한 걱정도 문제겠지만, 어느 정도 자신의 몸을 살피고 적정하게 교정할 수 있는 것들, 혈압, 당뇨, 고지혈증, 비만, 흡연 등은 적극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정말 병 없이 살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환자는 관상동맥우회술과 판막치환술을 잘 마치고, 동맥경화에 대해 고지혈증약과 심부전 약물들을 사용하면서 외래를 다니고 계신다. 물론 현재 하시는 과수원 일도 열심히 하시고, 술, 담배는 이제 끊고 자신의 몸을 좀 더 잘 살피려고 노력하신다. 수술 전 검사에서 대변 검사상 혈변이 의심되어 시행한 대장 내시경상에서 대장암도 발견이 되어 심장 수술 후 대장암 수술도 진행하였다. 다행히 암은 초기에 발견되어 항암 수술 없이 대장 부분 절제로 수술이 끝났다. 중간에 수술받지 않고 자의 퇴원하려고 했는데, 나중에 대장암 수술까지 마치고 와서는 하시는 말씀이 너무 겁이 나고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다 도망치고 싶었다고 하는데 심장 수술도 잘되고, 대장암도 일찍 발견해서 수술한 게 감사하다고 하신다. 과거에 비해 의료의 발달로 우리의 평균 수명이 높아졌다. 병원을 한 번도 안 다닌 게 자랑이 아니라 필요한 진료를 적절히 잘 보고, 적시에 맞는 치료를 받는 게 더 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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