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자의 속살] “빨간색으로 이름 쓰면 죽는다?”

빨간색 펜으로 이름 쓰면 죽는다? 미신일 뿐
'빨간색' 좋아하는 중국인도 '빨간색 글씨'는 안 써
  • 등록 2020-02-09 오전 12:00:00

    수정 2020-02-09 오전 12:00:00

[이데일리 김소정 기자] 우리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미역국을 먹지 않습니다. 은행 달력을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믿고요. 우리도 모르게 익숙해진 속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이 속설들을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고 우리가 왜 믿어야 하는지를요. 김 기자의 ‘속살’(속설을 살펴보는) 이야기 시작해보겠습니다.

방송인 조영구가 한 방송에서 팬에게 빨간색 펜으로 사인을 해줬다가 된통 혼이 났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빨간색 펜밖에 없어서 사인을 해준 것 뿐인데...

그 팬은 조영구에게 “조영구씨! 지금 뭐 하는 거예요?”라고 소리를 치며 사인받은 종이를 갈기갈기 찢었다고 한다.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죽는다?’

빨간색으로 내 이름을 적어봤다. 일주일이 지나도 내게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사진=김소정 기자)
우리는 빨간색 내복과 지갑은 ‘행운’을 부른다고 믿으면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 건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나 역시 어릴 때 친구가 붉은빛이 도는 펜으로 편지를 써서 줘 오랫동안 노려봤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되어서도 우리는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지 않는다. 빨간색으로 이름이 적히면 ‘재수 없다’ 또는 ‘죽는다’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빨간색으로 이름 쓴다고 우리가 죽거나 불행해지지 않는다.

사형수 명찰은 빨간색…죽음의 의미?

SBS 드라마 ‘피고인’ 캡처
그럼 왜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보는 걸까.

이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있지만 여러 가지 해석이 있는데 먼저 교도소 수용자들의 명찰을 살펴보자. 일반적인 수용자는 흰색, 조직폭력사범은 노란색, 마약사범은 파란색 명찰을 착용한다. 죽음을 앞둔 사형수는 빨간색이다. 또 과거 법관은 빨간색 잉크로 사형판결문에 서명했다는 설도 있다. 빨간색과 죽음의 연관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호적에 빨간줄 그어진다’라는 말도 들어봤을 거다.

지난해 독립운동가 김상덕의 아들 김정육(82)씨는 지난해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호적에 빨간줄’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상덕은 이승만 정권의 방해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에서 물러났다. 얼마 후 그는 한국전쟁 때 납북됐다. 이 때문에 아들인 김씨까지 연좌제에 적용돼 호적에 ‘빨간줄’이 그어졌다고 했다. 이 ‘빨간줄’ 때문에 신원 증명서를 발급받지 못해 취업이 어려워 결국 공사판 일용직으로 일했다고 전했다.

지난해 TV조선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작사가 이호섭씨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호적에 빨간줄이 그어져 사법시험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이씨의 아버지는 6·25 전쟁 당시 좌익 활동에 연루된 혐의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유튜브 ‘EBS 교양’ 영상 캡처
중국인들에게도 빨간색 글씨는 ‘부정적 의미’

중국인들에게 빨간색은 황금색과 함께 대표적인 길색이다. 빨간색은 권력과 부를 의미한다.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빨간색 글씨는 절대 쓰면 안 된다. 친구들과 빨간색으로 편지를 쓰면 절교를 뜻한다고 한다. 또 빨간색으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기를 바라는 구나’라고 생각한다.

과거 중국에서는 주사라는 붉은 돌을 갈아 염료로 사용했다. 특히 이 염료로 자신의 이름을 쓰면 무병장수한다는 설이 있었는데 불로장생을 갈망했던 진시황이 자신만 빨간색 이름을 쓸 수 있도록 백성들에게 엄포를 놓았다고 한다. 그 후 황제가 아닌 사람이 빨간색으로 이름을 쓰면 처형을 내렸다는 미신이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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