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공지능(AI) ‘성숙도’(Maturity)가 세계 6~14위인 2군 ‘경쟁국’에 속한다는 평가가 나왔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보고서 ‘AI 성숙도 매트릭스’에서 미국·중국·영국·캐나다·싱가포르 5개국을 분석 대상 73개국 중 1~5위인 1군 ‘선도국’으로 분류하고, 그다음 그룹인 ‘경쟁국’으로 한국과 일본·대만·인도·호주·싱가포르 등 14개국을 꼽았다. ‘성숙도’는 경제가 AI 기술에 적응하면서 그 잠재력을 활용할 준비가 얼마나 돼있는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기술 개발과 활용을 아우른 AI 경쟁력에 대한 종합적 평가 잣대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평가는 우리 정부가 주장해온 ‘글로벌 3위권’론을 무색케 한다. 정부는 그동안 영국 토터스미디어의 ‘글로벌 AI 순위’에 근거해 “우리나라의 AI 경쟁력은 세계 3위권”이라고 밝혀왔다. 이 순위는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싱가포르, 4위 영국, 5위 프랑스, 6위 한국, 7위 독일, 8위 캐나다 등이다. 하지만 3위부터 8위까지는 서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3위권’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그러나 이번 BCG 보고서는 한국을 AI 메이저 그룹에서 제외했다.
그러잖아도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크다고 경고해 왔다. BCG에 따르면 미국과 싱가포르의 경우 강력한 AI 인재 풀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AI 인재 공급 부족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AI 특허 출원에서는 최근 10년간 중국이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 선두를 달린데 반해 우리나라는 중국의 10분의 1을 간신히 넘고 있다.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온라인 서비스 등에서, 중국은 자율주행차와 가전 등에서 기술 표준을 설정할 만한 지위에 올랐지만, 우리나라는 그럴 만한 분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AI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반과 정책적 지원 체제 구축에 필수적인 기본법 제정이 다른 주요국에 비해 지연되고 있다. AI 기본법안은 지난달 국회 상임위를 통과해 본회의 처리를 앞두고 있었는데 비상계엄 사태로 또 기약 없이 미뤄졌다. 기본법 하나도 못 만드는 한국이 세계 3위권을 자부했다는 게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