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 인물의 얼굴 등 신체와 목소리를 다른 인물의 것으로 변조하는 ‘딥페이크’가 4·10 총선의 훼방꾼으로 등장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19일까지 22일간 딥페이크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위반 게시물 129건을 적발했다. 선관위는 딥페이크 영상물에 대해 대부분 삭제 처리하는 데 그쳤지만 앞으로는 고발 등 법적 조치도 취하겠다고 밝혔다. 딥페이크가 선거에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딥페이크는 정치인이 나오는 영상을 가짜인 줄 모른 채 보고 듣게 할 수 있다. 인공지능(AI) 기술까지 적용돼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경우가 많다. 특정 정치인의 이미지를 조작할 목적으로 제작된 딥페이크 영상이 유포되면 민심이 왜곡될 수 있다. 단초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타났다. 2022년 대통령 선거 때에는 각 후보 진영이 스스로 ‘AI 윤석열’과 ‘AI 이재명’이라는 가상인간 영상을 만들어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에는 ‘AI 윤석열’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영상이 유포된 바 있다. 이번에는 특히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려는 악의적 딥페이크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돼 왔다.
이에 대응해 국회가 지난해 12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90일 전부터 딥페이크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했다. 선의든 악의든 사실상 모든 딥페이크가 금지된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5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딥페이크가 선거판을 뒤흔들 가능성이 제거됐다고 장담할 순 없다. 온라인 영상물은 유포 속도가 워낙 빨라 선관위 등 당국이 감시·단속해 봤자 이미 선거판이 흔들린 다음의 뒤처리에 그칠 수 있다. 게다가 딥페이크 영상물이 해외 인터넷주소(IP)를 통해 유포된 경우에는 범인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악의적 딥페이크는 선거를 통한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되므로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선관위가 특별대응반 운영에 나섰지만 네이버·카카오 등 영상물 유포 경로상의 기업들이 협조하지 않으면 차단하기 어렵다. 관련 기업들도 딥페이크 영상물에 대한 자체 감시 및 식별 표지 붙이기 등의 대책을 속히 내놓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