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만기가 이달부터 돌아오면서 대규모 투자자 손실이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2021년 초 1만 2000선까지 치솟았던 H지수가 급락해 지난해 말 5700선으로 반토막났기 때문이다. 이에 금융감독원이 홍콩 ELS를 판매한 12개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어제부터 현장검사에 들어갔다.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분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며 혼란이 빚어질 우려가 있어서다.
홍콩 ELS 판매 잔액은 지난해 11월 현재 19조 3000억원이며 그중 80%인 15조 4000억원의 만기가 올해 돌아온다. 판매 잔액의 91%가 개인투자자에게 판매된 것인데 65세 이상 고령 투자자가 사들인 것이 계좌 기준으로 8만 6000건(5조 4000억원)에 이른다. 전체 잔액 가운데 고령 투자자 비중이 28%나 된다. 이로 미뤄 홍콩 ELS 판매 과정에서 기초자산의 급변동 가능성과 손실 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는 불완전판매가 횡행했을 개연성이 높다.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선 불완전판매 피해 사례가 폭로되고 있기도 하다.
금감원 현장검사 대상이 된 금융회사는 국민·신한·하나·농협·SC제일 등 5개 은행과 한국투자·미래에셋·삼성·KB·NH·키움·신한 등 7개 증권사다. 금감원은 이들에 대해 이미 지난해 11~12월 사전조사를 실시했으며 그때 홍콩 ELS 판매와 관련된 내부 관리체계상 문제점을 다수 발견했다고 한다. 특히 중국군과 연계된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발효되면서 홍콩 증시가 위기에 빠진 2021년 초에도 국내 금융회사들이 판매에 열을 올린 점이 주목됐다. 당시 금융회사들은 홍콩 ELS 판매를 자제하기는커녕 오히려 수수료 수익을 노려 늘려나갔다. 판매 실적을 업무성과 평가에 비중 높게 반영하기도 했다.
투자에 따르는 손실 위험은 투자자가 자기 책임으로 떠안는 것이 원칙이고 자본주의 시장 질서에 부합한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중간에서 투자 상품을 판매하면서 투자자를 속이거나 알려야 할 정보를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이다. 금감원은 현장검사에서 불완전판매 사례를 빠짐없이 파악해 금융회사들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