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SK그룹 회장)이 “지금 걱정은 반도체를 통해 아무리 돈을 벌어도 번 돈보다 더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업계가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부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세계 주요국들이 천문학적 규모의 보조금을 쏟아부으며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에 나선 상황에서 한국도 세제 혜택을 넘어 과감한 지원금 지급이 절실하다는 것을 호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그는 지난 주말 대한상의 제주포럼의 기자간담회에서 “(SK하이닉스는)아직 상대적으로 미국 내 반도체 투자가 그렇게 크지 않다”면서 “트럼프 2기 전망은 내년 봄이 지나야 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짓기로 한 최첨단 패키징 공장을 두고 한 말이다. SK하이닉스는 이 공장 건설을 위해 지난 4월 미 정부에 보조금 신청을 한 뒤 결과를 기다려왔다. 하지만 11월 대선에서 재집권 가능성이 높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외국 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에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해 왔다.
실제로 트럼프가 당선돼 정책을 수정하면 국내 반도체 업계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공장 건설 자체를 포기해야 할지 모른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에 건설 중인 파운드리 공장에 64억달러의 보조금을 지급받기로 이미 확정됐으나 이마저 축소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미국 등 주요국 반도체 업체들은 모두 자국 정부로부터 거액의 보조금을 받고 있다. 중국이 69조 6000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일본은 라피더스 등에 총 48조원 이상의 보조금을 줄 것을 적극 검토 중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국내 업체들이 미국 정부의 보조금마저 못 받거나 축소되면 큰 타격을 입을 게 불 보듯 뻔하다.
정부는 이달부터 26조원 규모의 ‘반도체 생태계 종합 지원 방안’ 실행에 나섰지만 저리 대출과 세제 혜택 위주다. 그러나 국가 대항전이 된 글로벌 반도체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면 우리도 반도체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마냥 외면할 수는 없다. 대기업 특혜로 깎아내리기에는 현실이 너무 엄중하다는 것을 정부와 정치권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