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추락하는 쌀값, 양곡법 재추진은 해법 아닌 독약될 것

  • 등록 2024-08-21 오전 5:00:00

    수정 2024-08-21 오전 5:00:00

쌀 풍년을 맞았지만 농민들은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쌀값이 폭락하고 있어서다. 작년산 구곡이 미처 소비되지 못하고 아직도 창고에 잔뜩 쌓여 있는데 신곡 수확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 쌀농사는 이상 기후 영향으로 아열대성 고온과 풍부한 일조량, 강수량이 더해져 예년에 보기 드문 대풍이 예상되고 있어 쌀값 폭락세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정부가 그제 쌀 45만t을 사들여 공공비축하는 내용의 긴급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 정도로 쌀값 폭락세가 진정될 지는 불투명하다.

풍년이 들수록 농민들이 불행해지는 현 상황은 한국 쌀농업의 구조적 모순을 잘 보여준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1인당 쌀 소비량은 1991년 116.3㎏에서 2022년 56.7㎏으로 31년 만에 절반 아래로 떨어졌다. 소비는 계속 줄어드는데 생산을 줄이지 않아 과잉생산이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 결과 쌀이 남아돌아 거의 매년 쌀값 폭락 사태를 빚고 있다. 지난해 10월 80㎏당 21만 7552원이었던 산지 쌀값은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해 이달 15일에는 17만 7740원까지 떨어졌다. 이에 농민단체들이 쌀값 폭락에 항의하며 전국 곳곳에서 트랙터를 동원해 논을 갈아엎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되풀이되는 쌀값 폭락 사태를 예방하려면 쌀 농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 즉 과잉생산 구조를 적정생산 구조로 바꿔야 한다. 해법은 자명하다. 소비를 늘리고 생산을 줄이는 것이다. 농식품부가 지난 수년간 벌여온 가루쌀 개발 및 보급 운동은 밥 대산 빵을 선호하는 식생활 패턴의 변화에 비춰볼 때 소비를 늘리는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생산을 줄이려면 쌀 대신 잡곡 등 타 작물로 생산대체를 유도하는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최근 정부가 남는 쌀을 의무매입토록 하는 양곡법 개정을 재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이 법안은 해법이 될 수 없다.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주면 농민들은 생산을 줄이지 않는다. 이는 쌀농업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당장은 쌀값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길게 보면 쌀농업의 자생력을 약화시켜 농민 피해를 키우게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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