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서 시작된 정치 혼란으로 국가 안보의 최일선을 맡은 군과 정보기관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군과 정보기관에 대한 최고 지휘권자인 윤 대통령부터 탄핵은 모면했지만 정상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윤 대통령은 국회의 신속한 해제 결의로 비상계엄에 실패한 뒤 “국정 운영은 우리 당(국민의힘)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다”고 했지만 안보상 비상사태 발생 시 대응은 그런 식으로 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국방정책 수장인 김용현 국방부 장관은 비상계엄을 주도했다가 실패한 뒤 내란 및 직권남용 혐의로 윤 대통령과 함께 고발됐다. 김 장관은 어제 새벽 검찰에 자진 출두했고, 검찰은 그를 긴급 체포했다. 국가정보원에서는 홍장원 1차장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으로부터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주요 정치인들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폭로해 내홍에 휩싸였다. 조태용 국가정보원장은 정치인 체포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반박했다.
수도방위사령부·특수전사령부·국군방첩사령부 등 3개 부대도 혼란에 빠졌다. 국방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김선호 차관은 비상계엄에 동원된 3개 부대 사령관에 대해 직무정지 조치를 내리고 직무대리자를 지정했다. 3개 부대는 수사에 착수한 경찰 국가수사본부와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주된 타깃이 될 수밖에 없어 당분간 안정적 운영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차관은 그제 저녁 각 군 참모총장을 비롯한 주요 지휘관과 국방부·합참 주요 직위자를 대상으로 화상회의를 열어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 국회에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되는 시간대에 이런 회의를 여는 것이 오해를 살 수도 있었지만, 김 차관은 군 기강을 시급히 다잡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폐기됐지만, 야당은 제2, 제3의 탄핵소추안 발의를 공언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안보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불법적 비상계엄에 대한 단죄와 정치 혼란 수습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안보 공백 수습을 뒤로 미뤄서는 안 된다. 안보에 대해서는 여야와 정부가 비상 협의 채널을 가동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