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종로구 세운상가 일대 공중보행로를 철거한다. 공중보행로는 종묘에서 세운상가를 거쳐 인현·진양상가까지 남북으로 1km에 걸쳐 7개 건물 3층을 잇는 시설이다. 불과 2년 전 1109억원을 들여 개통했으나 활용도가 낮아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 일대를 녹지생태도심의 핵심축으로 재창조한다는 전략을 2022년에 발표했다. 공중보행로 철거는 그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원래 이 일대는 구도심 재개발 대상이었다. 2006년 당시 오 시장은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그러나 후임자인 박원순 전 시장은 도심 보전과 재생을 앞세워 상가를 그냥 두고 공중보행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보행로는 2016년 착공했고 2단계 사업을 거쳐 6년 뒤인 2022년 개통됐다. 오 시장은 공중보행로가 세운상가 재개발을 방해하는 ‘대못’이라고 비판했다.
보행로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감사원은 지난 8월 감사보고서에서 “총사업비 1109억원을 투입하고서도 당초 사업의 목적인 보행량 증대를 통한 세운상가 및 주변 지역 재생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보행량이 예측치의 1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인 도심 낙후지역으로 꼽히는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은 서울시의 묵은 숙제다. 공중보행로 같은 미봉책으론 상권이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 이번에 확인됐다. 그보다는 아예 건물을 헐고 이 일대를 고층빌딩숲과 나무숲이 공존하는 녹지생태도심으로 재창조하겠다는 오 시장의 구상이 타당해 보인다. 이렇게 되면 현재 4%를 밑도는 도심 녹지율은 15% 이상으로 높아진다.
박 전 시장이 전임자의 정책을 뒤집어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상권 활성화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한 채 시민이 낸 막대한 세금만 공중에 날아가게 생겼다. 다만 이해관계가 첨예한 재개발은 사전에 주민 동의를 충분히 확보하는 게 필수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보행로에서 얻은 교훈이다. 서울시는 이달 중 주민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한 뒤 내년부터 보행로 철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먼저 주민의 지지를 확보해야 시장에 따라 정책이 왔다 갔다 하는 혼선을 막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