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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경(사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최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이수역 사건’으로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여성과 남성 간 성대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 이번 사건을 여혐과 남혐의 대립 구도로 몰고 가고 있는 것에 ‘말도 안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여성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
나 원장은 “상호혐오가 성립하려면 프랑스나 영국처럼 객관적으로 동등하거나 비슷한 힘을 가진 경우에나 가능한 것”이라면서 “아직 명백히 약자인 여성에 대한 혐오가 남성에 대한 혐오와 1:1의 개념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여성의 성평등 요구에 대해 ‘여성우월주의’나 남성 혐오라고 비난하는 것은 과거 흑인들이 외쳤던 인종차별 반대에 대해 ‘백인혐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논리라는 것이다.
나 원장은 같은 맥락에서 이수역 사건에 대해서도 “타고난 신체적 조건 자체가 다른 남성과 여성 간에는 싸움이 성립될 수 없다”면서 “여자가 말을 심하게 했다고 해서 남자의 폭력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사람들이 너무 지엽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이름처럼 양성평등 교육 및 성인지 교육을 효율적이고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진흥시켜 사회의 남녀차별적 의식과 관행을 개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관이다. 최근처럼 여성과 남성간 성대결이 극심한 상황에 책임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페미니즘은 소수성 깨닫게 해주는 능력”
나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다. 명함에도 나윤경이 아닌 부모의 성을 동시에 쓰는 ‘나임윤경’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연세대 교육학과 졸업 후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에서 성인여성교육 석사학위와 페미니스트 페다고지 박사학위를 받았다. 페미니스트 원조격인 나 원장이 생각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 내가 제 3세계에서 온 이주여성이 아니더라도, 페미니즘은 그 여성이 원하는 욕망이나 욕구가 무엇인지를 상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나 원장은 “페미니즘은 단순히 젠더 문제에 국한돼 있는 개념이 아니다”라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자원을 덜 가지고 있는 입장에 놓도록 해 소수성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나 원장은 내년부터 양평원 교육 내용을 대대적으로 손질할 예정이다. 공공기관 등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이 의무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획일화된 교육으로 인해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나 원장은 “그동안은 군인, 대기업 재직자 등 처한 상황이 전혀 다른 사람들에게 모두 동일한 내용으로 인식을 바꾸기 위한 교육을 진행했다”면서 “하지만 이제는 인식을 바꾸려기보다는 공적인 관계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처벌한다는 엄격성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교육하려 한다”고 말했다. 즉, 성과 관련한 행동에 있어서 ‘규칙이니 지켜야한다’는 개념을 주입해 직접적인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나 원장은 올 한해 최대 화두였던 미투 운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최근 들어 거셌던 미투 바람이 한 풀 꺾이면서 ‘현실은 변한게 없다’는 좌절감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 원장은 “미투 운동이 다소 흐지부지 되고 있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 이후로 소수일지라도 분명히 사회는 바뀌고 있다”면서 “작더라도 분명히 새 세포가 만들어지고 있고, 이것이 새로운 영향을 미쳐 사회 전체에 희망을 줄 수 있다면 그 의미는 충분히 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