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선물용 과일을 사러 영등포청과시장에 온 신혼부부 김모(33)씨와 배우자는 박스당 8만원에 달하는 과일 가격표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김씨는 “알이 큰 8만원짜리를 사고 싶었는데 가격이 부담스러워 5만원짜리로 샀다”며 “그래도 이미 예산을 넘었다”고 헛웃음을 지었다.
추석 연휴를 앞둔 9일 장을 보기 위해 전통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표정이 편치 않다. 과일부터 생선, 채소까지 오르지 않은 품목이 없기 때문이다. 상인들 역시 고물가 여파로 시민들이 씀씀이를 줄이자 “역대 최악의 경기”라며 울상을 지었다. 게다가 정부가 내놓은 고물가 대책에 대해서도 “체감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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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추석이 일주일이나 남았지만 이날 오전부터 영등포전통시장과 청과시장에는 미리 장을 보러온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상인들은 제철을 맞은 농수산물을 정리하느라 손이 바쁘게 움직였고 선물용 포장을 위해 알록달록한 색감의 보자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장 한 켠에서는 한 상인이 제수용 전을 쉴 틈 없이 구워내 고소한 냄새로 가득했다.
올 추석 아들 내외를 1년 만에 만난다는 이모(77)씨는 “동태포를 조금 샀는데 3만원을 달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장을 보려 (온누리)상품권을 30만원 정도 샀는데 이걸로는 택도 없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식혜를 하기 위해 엿기름을 구매하던 정모(79)씨 역시 “특히 채소랑 과일이 너무 비싼 것 같다”며 “상품권으로 물건을 사고 있는데 물가 오른 걸 생각하면 그리 싸게 사는 것 같지도 않다”고 토로했다.
생각보다 더 높은 물가에 시민들은 필요한 만큼만 구매하는 소량 구매를 하고 있었다. 과거 사과를 한 박스씩 샀다면 이제는 제사에 필요한 개수만큼만 구매하는 식이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장사가 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택배용 과일 포장에 한창이던 A씨는 “과거에는 박스 단위로 구매해가던 손님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소량으로 구매하는 분들이 많다”며 “대목인 명절에 바짝 벌어둬야 하는데 이제는 그런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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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추석 물가를 잡기 위해 배추 등 20대 성수품을 역대 최대 규모인 17만톤(t)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대책에 대해 상인들은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수산물을 팔고 있는 오모(53)씨는 “조기나 일부 품목을 싸게 들여오면 뭐하나. 오히려 다른 게 상대적으로 더 비싸게 들어와 장사가 더욱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일 가게를 운영 중인 B씨는 “최근 싸게 들어온 것들은 제수용이라고 하기엔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온누리상품권 특별할인에 대해서도 아쉽다는 반응이었다. 60대 서모씨는 “온누리상품권의 취지는 너무 좋지만 모든 판매액이 전통시장에 몰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가맹점이 아닌 곳에서 상품권을 쓰고 이를 현금화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런 문제점들을 잡아줬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높은 생활물가로 상인들과 시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생활물가 자체가 높고 임대료·인건비 부담이 있는 상황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 둔화는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농산물 물가상승률은 3.6%에 달했으며 대표적인 성수품인 배의 경우 120.3%를 기록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