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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팀이 강우콜드로 무승부를 기록하며 빛이 바랐지만 ‘최고의 타자’ 박병호가 ‘최고의 투수’ 밴덴헐크를 상대로 만들어낸 홈런이었다는 점에서 박병호에게 의미가 있었던 일이었다.
박병호는 밴덴헐크에게 무척 약했다. 통산 타율 11타수 무안타. 올해는 지난 해보다 더욱 강력해진 밴덴헐크다. 10일 목동 삼성전을 앞두고 선발 밴덴헐크를 상대해야하는 박병호에게 준비해 둔 공략법에 대해 물었다.
박병호는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는 게 중요하다. 작년부터 이상하게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다. 오늘은 타이밍을 맞추는데 중점을 두고 치려고 한다”고 했다.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자세한 비책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타석에서 결과로 직접 보여주겠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맞은 첫 타석. 박병호는 보란듯이 1회말 2사 1루에서 2-0으로 앞서 나가는 투런 홈런을 터뜨렸다. 직구를 커트해내며 타이밍을 맞추던 박병호는 2B-2S에서 6구째 141km짜리 커터를 받아쳐 비거리 145m나 되는 장외홈런으로 연결시켰다. 개인 통산 3번째 장외 홈런.
달라진 타격폼이 첫 홈런포의 열쇠였다. 다른 우투수를 상대할 때와 타이밍을 잡는 방법이 달라져 있었다.
박병호는 다리로 타이밍을 잡는 스타일이다. 보통 투수들을 상대할 땐 왼 다리를 살짝 든 뒤 끌어서 타이밍을 잡는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다리를 들지 않고 딛어놓은 채 스윙을 했다. 왼발 엄지를 미리 찍어 놓고, 박아놓은 채로 친다는 느낌이다. 박병호는 사이드암 투수를 상대할 때 타이밍을 잡기 위해 이러한 방법을 쓰곤 했다. 타이밍을 잡기 위해 다리를 미리 딛여놓고 볼을 충분히 봤다.
결국 달라진 박병호의 대응법은 통했다.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는데 중점을 두겠다”는 박병호가 다짐을 현실로 만든 순간이었다.
또 한 가지. 박병호가 밴덴헐크와 맞붙는 것이 이번이 끝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홈런의 의미는 있었다.
밴덴헐크는 홈런을 얻어맞은 뒤 2,3번째 타석에선 박병호를 더욱 껄끄러워할 수 밖에 없었다. 밴덴헐크는 3회 1사 1,3루 위기서 박병호를 상대로 몸쪽 직구를 찔러넣으며 삼진을 잡아냈지만 6회엔 선두타자로 만난 박병호를 볼넷으로 내보냈다. 삼성 배터리 입장에선 어렵게 승부하려는 마음이 강했다. 이후 밴덴헐크는 무사 1,3루서 윤석민의 땅볼 때 박병호를 홈까지 허용했다.
반대로 박병호로선 자신감이 생길 법한 한 방이었다. 이제 타이밍도 맞아가기 시작하면서 밴덴헐크와 악연도 끊어냈다.
시즌 후반, 그리고 점점 더 뜨거워질 가을, 중요한 순간에서 맞붙을 확률은 높은 두 선수. 리그 최고의 투수라 평가받는 밴덴헐크를 상대로 때려낸 국내 최고 타자 박병호의 홈런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