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우종 아나운서와 이영표 해설위원. |
|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이영표, 고맙다.”
KBS 내부에서 한 목소리로 나오는 말이다. 길환영 KBS 사장의 거취와 양대 노조의 파업 등으로 ‘위기’를 겪었던 KBS 브라질월드컵 중계가 상승 곡선을 타기까지 이영표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필드 위 수비수 이영표는 중계석에 앉은 지금 ‘원톱’ 부럽지 않은 스트라이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이영표와 조우종 아나운서. |
|
◇보직사퇴에서 시청률 1위까지
13일 월드컵 개막 후 한국 축구 팬들에게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의 32강전. 15일 오전 9시부터 중계된 해당 경기에서 KBS가 시청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영표와 조우종 KBS 아나운서가 차범근-차두리-박지성-배성재로 이어지는 SBS ‘월드컵 중계 라인업’의 관록과 안정환-송종국-김성주로 구축된 MBC ‘최강 라인업’의 친근감을 깼다. KBS는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 기준으로 전국시청률 6.6%, 수도권 시청률 7.5%를 기록했다. SBS보다 앞선 수치이며 MBC와 비교해 전국 시청률에선 1%P 뒤졌다. 수도권 기준으로는 더 좋은 성적을 거뒀다. KBS 길환영 사장 퇴임을 주장하며 제작을 거부하고 연이은 보직사퇴로 위기를 맞았던 KBS 스포츠국에 단비가 내린 시작이었다.
| 이영표가 ‘따봉 월드컵’에 출연한 모습.(사진=KBS 캡쳐) |
|
◇‘문어 영표’에서 ‘명품 영표’까지
중심에는 이영표가 있다. 이영표는 안정환, 송종국과 함께 2002년 대한민국 월드컵 4강 신화를 함께 쓴 주역이다. 하지만 MBC ‘일밤’의 ‘아빠 어디가’와 같은 몰입도 높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중인 안정환과 송종국의 인지도를 따라갈 순 없었다. KBS2 예능프로그램 ‘우리 동네 예체능’ 축구편에 합류해 김남길, 강호동 등과 호흡을 맞췄지만 이슈의 중심에선 멀었다.
이영표가 ‘발견’된 계기는 KBS2 ‘따봉 월드컵’이었다.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32강전을 앞두고 ‘따봉 월드컵’에 출연한 이영표는 일찍이 스페인의 몰락을 예고했다. 이영표는 “네덜란드의 젊은 친구들이 굉장한 유망주다. 게다가 스페인은 가장 흥한 다음에 가장 큰 시련이 찾아온다는 징크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상승세의 네덜란드와 침체기를 겪을 스페인이 맞물려 이번 월드컵에선 스페인의 몰락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후 일본이 코트디부아르에 ‘1:2’로 패할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완벽한 분석에 절묘한 예언까지 맞아 떨어졌다. 경기 결과를 족집게처럼 맞춰 화제를 모았던 ‘문어’에 빗대 ‘문어 영표’라는 별명도 나왔다.
| 이영표가 ‘우리 동네 예체능’에 출연한 모습.(사진=KBS 캡쳐) |
|
◇ 경험과 예능의 끼까지
이영표는 ‘인포테이너’의 모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포테이너’는 정보를 뜻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과 예능인을 의미하는 ‘엔터테이너(Entertainer)’를 합친 말이다. 전문 방송인은 아니지만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예능·교양 등의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을 흔히 ‘인포테이너’라고 칭했다. 이영표는 ‘인포테이너’의 조건인 발성부터 예능 감각까지 두루 갖춘 적임자로 분석되고 있다.
이영표는 해외 선수들의 이름과 포지션을 정확한 발음으로 전달한다. MBC 중계진의 문제로 지적되는 ‘초반 버퍼링’이 없다. ‘코트디부아르’를 ‘크로아티아’ 혹은 ‘코스타리카’로 언급하는 실수도 당연히 없다. 해설위원이 느끼는 생중계의 부담감이 시청자에게 전달되지 않는다는 게 이영표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문맥도 매끄럽고 정확한 편이다. ‘아’, ‘네’, ‘어’ 등의 시간 끌기용 추임새가 거의 없다. 한번 시작된 말은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매끄럽게 이어진다. 말이 길어지면 비문이 늘어 횡설수설의 해설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일본과 코트디부아르의 경기에서 코트디부아르가 역전골을 넣었을 당시 김성주(MBC)는 한 문장에 15개에 이르는 단어를, 차범근(SBS)은 20개가 넘는 단어를, 이영표는 8개의 단어로 구성된 문장을 구사했다.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쾌감 해설’도 탁월하다. ‘골’, ‘슛’ 등의 감탄사엔 아낌없는 에너지를 쏟는다. 오랜 앙숙 관계로 이어온 일본과의 특수성을 감안, 코트디부아르의 경기를 중계할 땐 대놓고 ‘편파 중계’에 나서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또 “제가 토트넘에서 뛸 때 동료였던 디디에 조코라에게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붙어 주라고 얘기했는데 아직도 못 고쳤네요” “토트넘 시절 드록바 때문에 회의를 10분 더 한 적도 있다” “(덩치가 큰) 드록바는 옆에서 들어가 공을 봐야 한다” 등 경험에서 우러나온 해설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