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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제정한 까멜리아상 첫 수상자의 영광을 차지한 류성희 미술감독은 미술감독으로서 자신이 걸어온 길이 영화계와 여성들에게 준 성과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자신을 미술감독 류성희라 이야기하고자 많은 노력을 했다”며 이같이 답했다.
류성희 감독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린 지난 5일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내외 취재진을 만나 까멜리아상의 첫 수상자가 된 소감과 작업 철학, 한국 영화계의 현주소 등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까멜리아상은 여성 영화인들의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부산국제영화제가 협업사인 샤넬과 함께 제정한 상이다. 다양한 영화 작업들을 통해 여성의 지위를 드높인 저명한 영화 제작자 및 업계 종사자들에게 수여한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올해 첫 수상자로 선정돼 지난 2일 이 상을 수여받았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등 오늘날 K콘텐츠의 세계화를 이끈 국내 거장들의 작품들에 류성희 미술감독의 이름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국 영화 르네상스의 원동력이 된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 ‘괴물’, ‘피도 눈물도 없이’, ‘박쥐’, ‘고지전’, ‘국제시장’, ‘암살’, ‘헤어질 결심’ 등 명작들을 작업했다.
한국행을 택한 계기를 묻자 류 감독은 “학교 졸업 후 1년 정도 미국 독립영화계에 있었다. 제가 서부 영화를 작은 걸 하나 맡게 됐는데 정말 힘들고 짧게 독립영화를 찍은 후 그날 밤 (한국에 돌아갈) 결심을 하게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당시 한국은 영화산업이 그렇게 형성되지 않았다며 주변의 모든 친구들이 만류했지만 뿌리쳤다. ‘영화는 어차피 판타지니까, 판타지를 꿈꾸겠다’는 마음으로 열흘 만에 모든 짐을 싸서 한국으로 돌아갔다”고 회상했다.
여성에게 그나마 기회가 열린 멜로가 아닌 장르 영화를 작업하겠다는 의지로 1년 이상을 쉰 적도 있었다. 그는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처음 시작한 영화가 류승완 감독님의 ‘피도 눈물도 없이’(2002)였다. 류 감독 소개로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님도 만났다”며 “모든 제작자가 날 거절했지만, 영화계의 르네상스를 만든 감독들이 등장하며 내게도 기회가 왔다. 당시 여성의 성공은 우연으로 여겨졌다. 우습게도 나는 ‘여기서 앞으로 10년간은 (나의 성공이) 우연이라 여겨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장르 영화만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고백했다.
견고했던 장르물의 유리천장을 오히려 돌파구로 생각한 생각의 전환과 용기가 오늘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었다고도 회고했다. 류 미술감독은 “지금 영화 미술 부서에 한해서만 이야기 하자면 여성 팀원들이 업무를 충분히 리드하고 있다. 오히려 ‘남성인데 꼼꼼함이 필요한 업무를 잘 할 수 있겠어?’ 역편견이 나올 정도”라며 “그래서 우리들끼리도 그런 편견을 가지지 말자고 서로 자제한다. 예산부터 창조적 디자인까지 남녀의 구분이 사라졌고 여성이 훨씬 빨리 승진하는 일도 많아졌다”고 변화한 현재 업계 분위기도 전했다.
그러면서 “처음 영화미술을 해야겠다 결심한 건 남녀를 떠나 정년이 길어서였다”며 “아카데미 시상식만 봐도 머리 하야신 분들이 상을 받는다. ‘그래, 저 정도라면 천천히 조급하지 않게 열심히 해서 괜찮은 장인이 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의 목표는 탁월함”이라고 커리어 철학을 밝혔다. 또 “지금도 한 분야의 탁월함을 이뤄가는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스스로 기대감도 있다”며 “꿈꾸는 바를 향해 조금 더 박차를 가해 탁월함에 이른다면 편견은 어느새 바뀌어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