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모른다" '박찬호 비극' 씻은 존 하트 단장의 부활

  • 등록 2014-09-25 오후 4:13:08

    수정 2014-10-07 오후 1:45:16

[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 됐다. 지난 2002년 1월17일(한국시간) 한국야구 팬들에게는 꿈만 같은 일이 태평양 너머에서 전해졌다.

그해 메이저리그 자유계약선수(FA)였던 ‘코리언특급’ 박찬호(41)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5년 6500만달러(678억원)짜리 ‘잭팟’ 계약을 터뜨린 것이다.

당시 레인저스 구단주였던 톰 힉스는 세계스포츠계(잉글랜드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 명문 리버풀 공동구단주)의 큰 손으로 불리며 돈을 물 쓰듯 펑펑 써대던 통 큰 인물로 명성이 자자했다.

‘큰 손에서 알거지’로 톰 힉스의 추억

힉스는 레인저스를 ‘제2의 뉴욕 양키스’로 만들겠다는 부푼 포부 아래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2001년 겨울 FA시장의 투수 최대어였던 박찬호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를 서슴지 않은 것도 목표를 향한 집념의 결과였다.

힉스는 박찬호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모든 일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다.

박찬호에 대한 과감한 베팅이 뼈아픈 실패로 판명 난 후 힉스는 씀씀이를 줄여야 했다. 미국 경제계의 내로라하는 거부 중 하나로 마를 것 같지 않던 그의 돈줄이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 등의 여파와 맞물려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재정파탄 상태에까지 직면했다.

견디다 못한 힉스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던 야구단을 매각하기로 했다. 2009년 겨울 매각협상이 급물살을 타 피츠버그 출신의 변호사인 척 그린버그 그룹이 텍사스의 새 주인으로 낙점됐다.

일이 마무리되고 난 뒤 정든 야구장 한 켠의 그늘진 곳에 홀로 서 있던 힉스의 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 수 없었다고 관계자들은 눈물로 전언했다.

지역 팬들은 힉스의 떠나는 빈자리를 아쉬워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는 지역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구단주였다. 그의 행동에는 품위가 묻어났고 무엇보다 스포츠를 정말로 사랑하고 지역스포츠 발전을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던 열정파여서다.

많이 아쉬웠는지 당시 댈러스 지역신문인 ‘댈러스 옵저버’는 끝내 힉스를 몰락으로 치닫게 한 상징적인 인물 4명을 꼽은 바 있다.

힉스의 치명적인 실수는 1990년대 후반 중흥기를 이끌었던 자니 오츠 감독과 덕 멜빈 단장을 해고한 것 그리고 뒤이은 알렉스 로드리게스(39·뉴욕 양키스)와 박찬호의 영입으로 요약됐다.

‘우승청부사’라 불리던 하트의 추락

돌이켜보면 오츠 경질 뒤 텍사스 성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멜빈의 바통을 이어받은 존 하트(66) 단장이 A-로드와 박찬호에게 거액을 안기는 일생일대의 우를 범하면서 재정파탄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만약 힉스의 운명 앞에 이 네 사람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이런 참담함은 없었을지 몰랐다는 아쉬움의 표현이 진하게 묻어났다.

불행 중 다행인지 힉스는 마지막까지 타고난 장사수완을 발휘해 큰 손해는 면하고 떠났다. 지난 1988년 2억5000만달러(약 2607억원)를 주고 사들인 텍사스 구단이 2009년 5억달러(5213억원) 이상의 가치로 팔려나갔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남는 장사를 했다고도 볼 수 있었다.

결국은 인사 실패가 부른 참사였다. ‘미국야구는 단장의 야구고 단장 농사가 10년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박찬호와 A-로드는 하트 단장의 잘못된 판단이 빚어낸 결과물이었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등을 거치며 2000년대 초 우승청부사 단장으로 명성을 드날리던 하트를 모셔와 팀 운영의 전권을 맡겼는데 그는 섣부른 우승욕심에 눈이 멀어 비싼 FA들만 사 모으다 낭패를 보고 쫓겨나듯 물러났다.

A-로드는 비전이 없는 텍사스가 싫다며 박차고 나갔고 허리부상 등에 시달린 박찬호는 골치만 썩이다 결국 샌디에이고 파드레스로 트레이드됐다. 이 충격파들을 극복하는 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트를 버리고 선택한 카드가 바로 지금의 존 대니얼스(37)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만 28세에 빛나던 메이저리그 역대 최연소 단장의 탄생이었다. 2005년 10월 대니얼스라는 젊은이가 그렇게 텍사스 단장직에 올랐다.

아울러 텍사스가 낳은 대표스타 놀런 라이언(67)이 대니얼스의 러닝메이트로 실질적인 단장 업무를 도맡았다. 그래도 힉스가 잘해놓고 간 일로 손꼽히는 라이언의 합류로 각고의 노력 끝에 2000년대 후반 들어 텍사스는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인생 모른다” 존 하트의 기적같은 부활

라이언과 대니얼스는 하트가 저질러놓은 최악의 상황들을 하나둘씩 수습해 나갔다. 특히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라이언은 비단 ‘명예의 전당’에 오른 대투수일 뿐만 아니라 이미 야구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날카로운 비즈니스맨이자 뛰어난 구단실무자였음을 증명 받았다.

그 라이언 사장이 이런 저런 연유로 지난겨울 구단주 그룹의 눈칫밥을 못 견디고 떠난 직후 다시 텍사스가 순식간에 꼴찌로 곤두박질 쳤다는 데서 팬들은 새삼 현명한 단장의 역할과 중요성을 뼈저리게 절감하게 된다.

레인저스를 망치고 물러난 하트는 그때만 해도 이 바닥에서 영원히 끝난 줄로만 여겨졌는데 10년이 훌쩍 넘은 세월은 텍사스에서의 치욕적인 과거마저 씻어내는 듯 보인다.

25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성적부진의 책임을 물어 경질된 프랜크 렌 단장의 후임으로 임시 단장직을 맡게 된 하트 구단 수석고문에게 영구적인 단장 즉 정식 단장을 맡아줄 것을 제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구단 원로에게 대충 잠시만 수습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참에 일선으로 복귀해 모든 걸 맡아 팀을 되살려 달라는 뜻이어서 주목된다.

하트는 이 제안에 대해 즉시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애틀랜타의 부단장으로 또 다른 천재가 될 수 있다는 35살 존 코폴렐라의 뒤에서 조련사가 되고 싶다는 뜻을 앞서 밝힌 바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어떻게 보면 박찬호와 악연인 하트 단장이 10여 년의 세월을 돌고 돌아 명문 애틀랜타의 정식 단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될지 매우 흥미롭게 됐다.

자신이 모시던 주인은 알거지가 됐고 박찬호는 은퇴했으며 약물파동에 휩싸인 A-로드는 복귀가 불투명하다.

그 뒤처리를 보란 듯이 해냈던 후임자마저 조용히 묻혀버린 2014년 들어 실패자로 낙인찍혀 영원히 사라진 듯 보였던 주인공이 짠하고 재등장하는 그림에서 얽히고설킨 스토리를 처음부터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은 참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혀를 내두르기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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