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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은 20일 강원도 강릉의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스웨덴과 7∼8위전에서 한수진이 만회 골을 넣는 등 분전했으나 1-6(1-2 0-1 0-3)으로 졌다.
B조 조별리그 3경기에 이어 5∼8위 순위 결정전 2경기에서도 모두 패한 단일팀은 5전 전패로 대회를 마감했다. 2득점에 28실점으로 득실차는 -26점이었다.
세계 22위인 한국, 25위인 북한으로 이뤄진 단일팀이 힘을 모으고 뜻을 합해도 스웨덴(5위), 스위스(6위), 일본(9위)과의 현격한 실력 차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올림픽에 첫 출전한 단일팀은 역사적인 2골을 터뜨렸다. 일본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혼혈 귀화선수인 랜디 희수 그리핀이 올림픽 첫 골을 터뜨렸다. 마치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것처럼 단일팀은 기뻐했다. 국민들도 함께 열광했다.
스웨덴과의 7~8위전에서 두 번째 이 나왔다. 주인공은 한수진이었다. 박종아의 절묘한 패스를 받은 한수진은 그림같은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단일팀은 평창 올림픽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의미있는 골이었다.
사실 남북 선수가 함께 손을 잡고 단일팀으로 올림픽에 나온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었다. 단일팀이 결정된 것은 올림픽 개막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지난달 22일이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남북 대표단이 모여서 한국 선수 23명, 북한 선수 12명 등 35명으로 단일팀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매 경기 북한 선수 3명을 반드시 출전시켜야 했다.
북한 선수들을 맞이해야 하는 한국 대표 선수들은 멘붕에 빠졌다. 머리 감독은 “역사적인 사건의 일부가 되다는 점은 흥분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선수들 23명 가운데 일부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는 점에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그나마 경기당 북한 선수 6명이 아니라 3명을 출전시키면 된다는 점에서 최악은 피했다“고 불편한 심기를 애써 감췄다.
선수들의 마음은 더 안좋았다. 올림픽만 바라보고 자신의 인생을 마친 선수들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북한 선수들과 출전 기회를 나눠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몇몇 선수들은 개인적인 공간 등에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터뜨렸다.
하지만 막상 함께 생활을 시작하고 훈련을 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라커룸을 함께 쓰고, 생일 파티를 열어주면서 선수들은 빠르게 한 팀이 됐다. 자연스럽게 서로 웃고 떠들면서 장난을 쳤다. 그냥 봐서는 남북 선수를 도저히 구별할 수 없었다. 그냥 한 팀의 언니, 동생, 친구였다.
개회식은 감동 그 자체였다. 남과 북의 에이스인 박종아와 정수현은 개회식에서 성화를 들고 힘께 성화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최종 주자인 ‘피겨여왕’ 김연아에게 성화봉을 건넸다. 갈등과 대립 대신 전 세계에 평화의 메시지를 선물하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북한 선수들은 아무런 편견없이 머리 감독의 지도를 잘 따랐다. 실력은 떨어질지언징 열정과 의욕은 뒤지지 않았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집요할 정도로 물어봤다.
머리 감독도 그런 북한 선수의 태도에 감동을 받았다. 그는 19일 마지막 공식 연습을 마친 뒤 “정말 슬프다. 난 잘 안 우는 편인데 북한 선수단이 돌아가면 울 것 같다”며 “그 선수들을 계속 챙겼는데 그들이 돌아가면 언제 다시 볼지 모른다. 친선경기 등이 있으면 좋겠다. 그 선수들을 계속 돕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단일팀은 스포츠의 작은 부분이었다. 하지만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생하고 협력할 수 있음을 잘 보여줬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남북 단일팀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했다”며 “이것이야말로 올림픽 정신”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심지어 미국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출신의 앤젤라 루제로 IOC 위원은 “단일팀이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고 공개 주장하기도 했다.
숨가쁘게 달려온 단일팀의 여정도 이제 막을 내렸다.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1991년 탁구와 축구 단일팀이 성사된 뒤 27년 만에 단일팀이 다시 찾아왔다. 이제 남북이 할 일은 단일팀의 감동을 여기서 끝내지 않고 전 분야에 걸쳐 제2, 제3의 단일팀을 만드는 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