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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숱하게 반복됐던 인터뷰서 이승엽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00공을 노렸다”라던가 “결정적일 대 한 방을 쳐서 기쁘다”가 먼저 떠오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따로 있다. 바로 “실투를 쳤다”가 정답이다.
이승엽은 늘 “실투가 들어와서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인미답의 400호 홈런을 친 3일에도 “운 좋게 실투가 들어와 홈런을 칠 수 있었다”는 말을 빼 놓지 않았다.
상대 투수에 대한 배려가 담긴 말이다. 내가 잘 쳐서 나온 홈런이 아니라 상대의 실수가 있었기에 홈런이 가능했다는 설명으로 홈런 맞고 상심했을 상대 투수를 위로했다.
최고의 공을 던졌는데 홈런을 맞는 것 처럼 절망스러운 일도 없다. 또한 이승엽에게 맞으면 곧바로 수 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이승엽은 그런 상대 투수의 마음까지 살뜰히 챙긴 것이다.
그의 배려는 이번 400홈런 레이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엽은 좀처럼 400홈런에 대해 자랑하려 하지 않았다. 카운트 다운이 들어가며 숱하게 많은 언론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뒤로 미뤄두었다. 팀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의 기억이 그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이승엽은 그 해 세계 최연소 300홈런과 아시아 신기록인 56호 홈런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언론은 이승엽의 홈런 소식을 전하느라 바빴다.
이승엽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부터 “2003년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최대한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곤 했다. 그리고 그가 원하던대로 400홈런을 친 딱 하루만 짧고 굵게 잔치가 벌어졌다.
이승엽은 또 다시 스타트 선 위에 섰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400홈런의 기억은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가 잘 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상대의 실투가 들어와야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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