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이 400번이나 반복했던 그 말 '실투'

  • 등록 2015-06-04 오후 1:47:10

    수정 2015-06-04 오후 3:25:15

400홈런 기념 유니폼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승엽. 사진=삼성 라이온즈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국민 타자’ 이승엽(39.삼성 라이온즈)는 대한민국에서 홈런 관련 인터뷰를 가장 많이 한 선수다. 그가 치는 홈런 하나 하나가 역사가 되면서 그만큼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렇게 숱하게 반복됐던 인터뷰서 이승엽이 가장 많이 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00공을 노렸다”라던가 “결정적일 대 한 방을 쳐서 기쁘다”가 먼저 떠오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따로 있다. 바로 “실투를 쳤다”가 정답이다.

이승엽은 늘 “실투가 들어와서 좋은 타구를 날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전인미답의 400호 홈런을 친 3일에도 “운 좋게 실투가 들어와 홈런을 칠 수 있었다”는 말을 빼 놓지 않았다.

상대 투수에 대한 배려가 담긴 말이다. 내가 잘 쳐서 나온 홈런이 아니라 상대의 실수가 있었기에 홈런이 가능했다는 설명으로 홈런 맞고 상심했을 상대 투수를 위로했다.

최고의 공을 던졌는데 홈런을 맞는 것 처럼 절망스러운 일도 없다. 또한 이승엽에게 맞으면 곧바로 수 없이 많은 기사가 쏟아진다. 이승엽은 그런 상대 투수의 마음까지 살뜰히 챙긴 것이다.

또한 스스로 교만해 지지 않기 위한 다짐이기도 했다. 잘해서 얻은 결과라기 보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으로 더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의 배려는 이번 400홈런 레이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엽은 좀처럼 400홈런에 대해 자랑하려 하지 않았다. 카운트 다운이 들어가며 숱하게 많은 언론 인터뷰 요청이 이어졌지만 꼭 해야 하는 것이 아니면 뒤로 미뤄두었다. 팀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2003년의 기억이 그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이승엽은 그 해 세계 최연소 300홈런과 아시아 신기록인 56호 홈런 기록을 모두 갈아치웠다. 언론은 이승엽의 홈런 소식을 전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너무 한 선수에게 집중된 관심은 팀 워크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매년 프로야구에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KBO 연감에 그 내용이 담겨 있을 정도였다. 2003년을 회고하는 연감에는 “삼성은 2년 연속 우승을 노려 볼 전력을 갖고 있었지만 결국 4위로 시즌을 마쳤다. 외국인 선수의 부진과 부상 등 악재도 있었지만 이승엽에게 몰린 지나친 관심도 한 이유가 됐다. 다른 스타급 플레이어들이 소외감을 느꼈고, 보이지 않는 팀 워크의 흔들림을 가져왔다”고 정리 돼 있다.

이승엽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시즌이 시작되기 전 부터 “2003년의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최대한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히곤 했다. 그리고 그가 원하던대로 400홈런을 친 딱 하루만 짧고 굵게 잔치가 벌어졌다.

이승엽은 또 다시 스타트 선 위에 섰다. 언제나 그랬던 것 처럼 400홈런의 기억은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하려고 할 것이다. 그가 잘 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상대의 실투가 들어와야 홈런을 칠 수 있는 선수라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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