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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는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8 KBO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두산 베어스를 연장 13회 접전 끝에 5-4로 누르고 시리즈 전적 4승2패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었다.
힐만 감독도 2017년 SK 지휘봉을 잡은 이후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 외국인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힐만 감독은 2006년 일본프로야구 니혼햄 파이터스를 이끌고 일본시리즈를 제패한 바 있다. 이로써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함께 우승을 경험한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당분간 이 기록은 쉽게 깨지기 어려울 전망이다.
SK는 2000년 해체된 쌍방울 레이더스 선수들을 중심으로 창단했다. 앞서 2007년과 2008년, 2010년 등 세 차례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 세 번 모두 김성근 감독 재임 시절에 이룬 결과였다.
SK는 김성근 감독이 떠나고 2012년 마지막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뒤 깊은 침체기를 겪었다. 2015년과 2017년 정규시즌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나선 것이 그나마 좋은 성적이었다. 김성근 감독 이후 이만수 감독, 김용희 감독이 팀을 이끌었지만 만족스런 결과를 내지 못했다.
2016시즌을 6위로 마친 뒤 SK는 구단 최초로 외국인 감독인 트레이 힐만이 감독으로 선임했다. 그전까지 한국프로야구에서 외국인 감독은 제리 로이스터 전 롯데 자이언츠 감독이 유일했다.
로이스터 감독은 2008∼2010년 3년 연속 팀을 포스트시즌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3번 모두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면서 한계를 드러냈다. 가을야구 단기전에서 필요한 세밀함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힐만 감독도 부임 당시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팬들은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을 2006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경험을 더욱 주목했다. 일본 감독 생활을 마치고 미국 메이저리그 캔자스시티 로열스 사령탑을 맡는 등 미국과 일본 야구를 두루 섭렵한 그가 한국에서 어떤 야구를 펼칠지 궁금해했다.
올시즌 SK는 더욱 업그레이드 됐다. 힐만 감독은 메이저리그에서는 이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이버매트릭스를 적극 활용하는 동시에 발사각도, 타구 속도 등의 전문적인 지표까지 도입해 SK를 더욱 강력한 ‘홈런 군단’ 군단으로 만들었다.
SK는 힐만 감독 부임 후 2년 연속 팀 홈런 1위에 올랐다. 지난해 팀 홈런 267개를 터뜨려 KBO리그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새로 쓴데 이어 올해도 233개으로 가장 많은 팀 홈런을 기록했다.
힐만 감독을 상징하는 또다른 키워드는 ‘시프트’다. 시프트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자의 타구 방향을 미리 예상해 야수를 집중 배치하는 수비 전술이다. 예를 들어 좌타자가 극단적으로 잡아당기는 스타일이라면 아예 1·2루 사이에 내야수들을 몰아넣고 2·3루간은 비우는 방식이다.
일반적으로 시프트가 이뤄지면 상대 타자들은 압박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부 투수의 경우 시프트에 대해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수비수가 없는 빈 자리로 타구가 갈 경우 쉽게 안타가 나오기 때문이다.
힐만 감독의 가장 큰 무기는 진심으로 뛰어난 소통 능력이다. 국내 감독도 하기 힘든 과감한 퍼포먼스로 팬들의 마음을 잡았다.
힐만 감독은 올해 시즌 초반 머리카락을 기른 채 등장했다. 단순히 멋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소아암 환우를 위하 가발을 만드는데 돕기 위해 머리카락을 기른 것이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까지 긴 머리를 유지하다 8월 11일 그라운드에서 팬들과 함께 이발을 했다. SK 에이스 김광현도 힐만 감독의 뜻에 감명받아 모발 기부에 동참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7월에는 폭염 속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 소아암 환우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찾아 선물도 전달하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었다.
시즌 전 미디어데이 행사에선 팬들에게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가 하면 시즌 중 로커로 변신해 멋진 발차기도 뽐내는 등 힐만 감독의 팬서비스는 그전 어느 감독, 선수와 차원이 달랐다.
힐만 감독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끝으로 SK 선수단과 작별한다. 정규시즌 막판 이미 “올 시즌을 끝으로 SK를 떠나겠다”고 발표했다. SK 구단은 재계약을 제시했지만 미국에 있는 노모를 봉양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그의 말에 더는 잡을 수 없었다.
선수들은 힐만 감독을 위해 가을야구에서 몸을 불살랐다. 한동민은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야구를 10년 넘게 했지만 이런 감독님을 또 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더 감독님을 오래 보고 싶으면 한국시리즈 가서 우승까지 해야 할 것 같다”고 의지를 다졌다.
외국인타자 제이미 로맥은 “힐만 감독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감독 중에서 최고다. 힐만 감독 덕분에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경기장에 올 수 있었다”며 “힐만 감독은 우리 선수들 모두를 꼼꼼하게 챙긴다. 그에게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힐만 감독과 SK 선수단의 2년간 동행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헤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다음 시즌 힐만 감독은 한국에 없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지도력과 성품은 야구팬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