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레슬링?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열정레슬러 김남석(인터뷰)

  • 등록 2015-10-27 오후 1:45:00

    수정 2015-10-27 오후 1:54:34

PWF 챔피언벨트를 들고 포즈를 취하는 프로레슬러 김남석.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김남석(30)은 젊은 프로레슬러다. ‘프로레슬링을 한국에서 아직도 하나’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한국에서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다. 열악한 인디단체이지만 한때 화려한 시기를 보냈던 한국 프로레슬링의 명맥을 이어가는 주인공이다.

멸종 직전의 프로레슬링에 새 생명과 온기를 불어넣으려는 김남석의 노력은 무모하다는 생각조차 든다. 하지만 그는 긍정적이다. ‘젊은데 뭘 못하겠느냐’라는 게 그의 마인드다. ‘똘끼’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한국 프로레슬링의 부활을 위해 작지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김남석을 통해 희망과 도전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다음은 프로레슬러 김남석과의 일문일답.

-본인을 간단하게 소개해달라.

▲안녕하세요. 한국의 인디프로레슬링 단체인 피트(FIT)의 대표이자 프로레슬러인 김남석이라고 합니다.

-‘피트’라는 단체 이름이 무슨 의미인가.

▲‘딱 맞다’라는 뜻의 ‘FIT’라는 단어와 프로레슬링을 합쳐 ‘프로레슬링에 딱 맞는 단체’라는 의미로 만들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기에 예전 60~70년대 과거의 스포츠로 인식된다. 그런데 젊은 선수가 지금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의외다. 어떤 계기로 프로레슬링을 시작하게 됐는가.

▲중학생 때까지는 유도나 태권도 같은 운동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3학년 때 누나가 큰 사고를 당해 돌아가셨다. 당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학교를 그만둔 뒤 1년 정도 방황을 많이 했다. 그렇게 불량학생으로 지내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WCW 프로레슬링 중계를 봤다. 나보다 더 불량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관중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더라. 자신의 강함을 뽐내며 시합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관중들이 그들의 드라마틱한 모습에 즐거워하는 것을 보고 스스로 생각하게 됐다.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는 안 좋은 짓이나 하고 있나라는 후회가 들었다. 프로레슬링을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음날 영등포에 있던 이왕표 체육관을 찾아갔다.

-처음 접했을 때부터 이왕표 선수 등 대선배들과 함께 운동했나

▲처음에는 노지심 관장님이 지도해주셨다. 이왕표 회장님은 가끔 오셨을 때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데뷔는 언제 했나

▲한국에서의 데뷔전은 2004년 6월 14일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치렀다. 상대는 나와 같이 데뷔했던 친구인데 내가 무난하게 승리했다. 원래 데뷔전에서 이기는 경우가 많이 없는데 운 좋게 이겨서 기분 좋았다. 데뷔전에서 이긴다는 것은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 경기 후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 뒤로 프로레슬링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데 고비는 없었나

▲육체적인 고비보다는 마음속 고비가 제일 컸다. 경제적으로 회복이 안되다 보니 다른 일을 하면서 프로레슬링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이 부자라서 훈련비를 받으며 운동을 했다면 걱정 없었을 텐데 내가 생계를 책임지다 보니 다른 일을 경험하면서 마음 속으로 많이 힘들었다. 프로레슬링을 하면서 여러 일을 많이 해야만 했다. 노가다부터 핸드폰 판매까지 3D 업종은 다 해본 것 같다. 일본 가서 선수생활을 할 때도 비자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한국에서 돌아와 돈을 벌어야 했다. 돈이 어느 정도 모이면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선수 생활을 했다. 그런 생활을 20대 때는 계속 했던 것 같다.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유학을 했다. 그때 생활은 어땠나.

▲한국에 자주 오는 일본 프로레슬러를 통해 일본 단체를 추천받았다. 그래서 간 곳이 카이엔타이 도조라는 곳이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갔다. 가서 보고 놀란 것이 대표가 타카 미치노쿠였다는 것이다. 타카 미치노쿠 대표는 미국 WWF(현 WWE) 프로레슬링에서 챔피언까지 지낸 분이었다. 처음 사무실에서 그 분을 만났을 때 깜짝 놀랐고 큰 동기부여를 받았다. 심지어 내 일본 데뷔전에서도 타카 미치노쿠 대표가 직접 경기를 해줬다. 블로그 등에서도 나에 대한 칭찬 글을 올려주면서 요미우리 신문 등에서 취재를 나오기도 했다. 그렇게 일본 생활은 순조로웠는데 안 좋은 일도 조금은 있었다.

-안 좋은 일이 무엇이었나.

▲그 단체에서 타카 미치노쿠 대표나 톱클래스 선수들에게 귀여움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본 다른 선수들이 아니 꼬았는지 레슬링이 아닌 다른 문제로 내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민족적인 감정을 건드리기도 했다. 내가 그냥 피하면 계속 따라와서 시비를 걸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모든 일본인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쁜 사람들도 분명 있었던 것 같다.

-일본에서 레슬러로서 꽃을 못 피우고 돌아왔는데 그냥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

▲그런 생각은 안 했다. 일본에서 못하면 한국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레슬링 하면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한국 프로레슬링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다시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외국에서 고생하면서 단순히 프로레슬링만 배운 게 아니라 프로레슬링 단체를 운영하는 방법도 배웠다. 한국에서 인디단체로서 어느 정도까지는 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조금 무모했다는 생각도 든다.(웃음)

-일본에서 돌아오고 나서 본인의 단체를 설립한건가.

▲아니다. 돌아오고 나서 종합격투기 체육관을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필라델피아의 인디 프로레슬링 단체를 3개월 동안 경험한 뒤 귀국해서 이후 정식으로 이름을 걸었다. 그게 2012년이다.

-지금까지 피트는 몇 번의 이벤트를 했나.

▲슈퍼노바라는 이름으로 대회를 계속 열고 있다. 도장에서 20~30명 정도의 관객들을 지켜보는 소규모 대회다. 한 달에 한 번씩 대회를 열면서 지금까지 25번 개최했다. 또한 수 백명 관중 앞에서 치르는 ‘인생공격’ 대회는 두 번 열었다.

-말그대로 ‘인디’다. 흥행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수준일 텐데 프로레슬링을 포기할 생각은 안 했나.

▲나는 프로레슬링 시장이 다시 오르는데 최소 10년, 최대 25년까지 내다보고 있다. 25년 이후 단체가 실패하면 그때 접을 생각이다(웃음). 이제 시작한지 3년 정도 됐다. 앞으로 22년 정도 더 해보고 안되면 접을 생각이다. 처음 슈퍼노바 첫 대회때 관중이 7명 뿐이었고 두 번째 대회 때는 3명이었다. 지금은 15명 이하로는 안 떨어진다. 내 나름대로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현재 활동 중인 레슬러는 몇 명인가.

▲나를 빼고 연습생을 포함해서 5명이 있다. 여기에 인형 레슬러가 하나 있다.

-한국 프로레슬링은 故 김일 선생 때부터 프로레슬링은 각본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한국 프로레슬링은 실전에 가까운 레슬링 스타일을 추구해왔다. 그렇다면 김남석 선수는 과연 어떤 스타일의 레슬링을 펼치려 하나.

▲내가 추구하는 레슬링은 WWE보다 더 엔터테인먼트 적인 레슬링이다. 사람들에게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인형을 레슬러로 시합을 시키는 것도 그 일환이다. 내 생각에 프로레슬링은 엔터테인먼트 적인 부분이 더 강조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거리축제나 행사에 초청받아 많이 경기를 했는데 그런 자리에서 보면 인형과 레슬링하는 모습을 보고 여성들이나 아이들이 진짜 좋아해준다. 그 인형을 사고 싶다는 얘기도 많이 한다. 평택 코스튬 축제에 가서도 레슬링 경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관객들이 나보다 인형과 더 많이 사진을 찍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엔터테인먼트적인 레슬링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프로레슬링은 프로레슬링이다. 격투기와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프로레슬링을 희화화시킨다는 지적은 받지 않았나

▲코믹한 이면에는 정말 제대로 된 프로레슬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일부 프로레슬링 선배들이 우리 대회를 보고 ’가짜 프로레슬링이다‘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하지만 많은 레슬링 팬들은 오히려 우리를 격려해주고 있다.

-본인은 어떤 스타일의 프로레슬러인가.

▲좀비레슬링을 추구한다. 격투기 선수로 따지면 닉 디아즈에게서 영감을 받은 캐릭터다. 상대에게 맞아도 크게 데미지를 받지 않고 전진하는 스타일이다. 흐물흐물 대면서 괴기스럽고 불가사의한 레슬링을 하고 있다. 원래는 플라잉 도넛츠라고 해서 공중기도 많이 구사했는데 나와 안맞는다는 것을 느꼈다. 몇 번 날아봤는데 많이 무섭더라(웃음).

-본인의 피니시 기술은 무엇인가.

▲파일드라이버 기술이다. 손을 교차로 잡아서 상대가 반항하지 못하게 만든 뒤 상대 머리를 링 바닥에 찧는 기술이다. 언더테이커의 툼스톤파일드라이버 보다도 위험부담이 더 크다. 그런 기술을 받아들이기 위해 프로레슬러들이 목근육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이 가장 영향받은 레슬러는 누구인가.

▲처음에는 스팅과 뱀피로라는 레슬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선수때문에 페이스 페인팅과 문신도 하게 됐다. 인간적으로 닮고 싶은 선수는 타카 미치노쿠 대표다. 가장 본받고 싶은 인물이다.

-얼마전에 WWE 출신의 맷 사이달(전 에반 본)과 경기를 가졌다. 어떻게 그 선수와의 경기가 성사됐나.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작년에 처음 만났다. 우연하게 청주에서 알게 된 지인 가운데 한 명이 ’자신의 형이 유명한 프로레슬러다‘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거짓말인줄 알았는데 그 사람이 바로 맷 사이달이었다. 마침 맷 사이달이 한국을 방문해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서울도 아니고 청주에 있다고 해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그래서 만나게 됐고 서로 얘기를 나눴는데 이 바닥이 좁다보니 내가 아는 사람을 맷 사이달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연결이 되면서 짧은 시간에 급격히 친해졌다. 이후 맷 사이달이 작년에 WWE를 스스로 나온 뒤 다른 단체에서 활약할때 내가 한국에서 시합을 해줄 수 있냐고 요청했다. 스케줄이 빡빡한 상황에서도 흔쾌히 허락했고 일정을 맞춰서 한국에 와 경기를 했다.

-경기를 해본 소감은 어땠나.

▲WWE나 WCW에서 챔피언을 지낸 선수를 직접 싱글매치로 대면한 것은 두 번째였다. 그쪽 세계의 레벨은 진짜 높은 것 같다. 격투기로 따지면 국내 단체 선수가 UFC 정상급 선수와 싸우는 기분일 것이다. 원래 비슷한 레벨의 선수라면 내 스타일이 독특하기 때문에 상대가 말려들기 마련이다. 그런데 맷 사이달은 전혀 말려들지 않았다. 새롭고 재밌다는 느낌을 받았다. 시합하면서 계속 즐거웠다. 레슬러는 시합을 통해 성장하는데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프로레슬링으로 더 주목받고 싶다는 조급함은 없나. 경제적인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하는가.

▲경제적으로는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 현재 EMS 트레이닝이나 기능성 트레이닝 코치 생활을 하고 있다. EMS 트레이닝은 온몸에 저주파 수트를 입고 근수축을 시킨 뒤 운동하는 과학적 방법이다. 가끔씩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로 강의도 하고 있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난하게 살지도 않는다.

-그래도 지금 고생하는 것 보다는 더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같다.

▲난 욕심이 많다. 고급 외제차 타고 싶고 집도 좋은데서 살고 싶다. 하지만 그런 목표가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되는 일은 아니다. 30~40대에 조금 힘들더라도 50대에 잘된다면 그게 더 좋은 거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내 도장에서 선수들을 가르치고 대회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너무 행복하다. 이대로 쭉 살면 불행해지겠지만 이 행복이 30대까지는 계속될 것으로 믿는다. 계속 좋아질 것이라 믿고 스트레스 받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지는 않아도 늘 지지해주는 팬들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진짜 고맙다. 우리 PWF를 찾아주는 팬들이 더 고마운 이유가 있다. 원래 한국 프로레슬링은 돈을 지불하고 보는 문화가 아니었다. 공짜로 보거나 TV로 볼 수 있는 문화였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벽을 허물고 있다. 우리 슈퍼노바 대회는 두 시합을 여는데 입장료 만원을 받는다.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돈이다. 공연업으로 볼 때 비싼 돈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비싸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만원이라도 받아야 그 팬들을 보답하기 위해 더 필사적으로 노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팬들이 매달 오셔서 만원씩 내고 봐주신다. 경기가 잘될 때도 있지만 안될 때도 있다. 그럼에도 팬들은 늘 이해해주고 응원해주신다. 항상 두 배, 세 배 고맙게 생각한다.

-김남석 선수의 꿈은 무엇인가.

▲당장은 200~300명 정도의 관중이 들어차는 대회를 한 달에 한 번 정도 꾸준히 하는 것아 목표다. 그러고 나서 서울에 300석 규모의 전용 경기장을 만들고 싶다. 평소에는 트레이닝 센터로 쓰고 매 주말에는 경기를 열어 흥행을 지속하고 싶다. 또한 사람들이 더 많이 즐길 수 있도록 방송을 통해서도 경기를 소개하고 싶다. 현재 DVD를 만들어 여러 방송사와도 접촉하고 싶다. 최종적인 목표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을 꽉 채우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이돌과 결혼하고 싶다(웃음)

-일반인들이 프로레슬링을 배울 수 있는 길이 있나.

▲물론이다. 우리에게 잘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있다. 현재 일산 내곡동에 체육관이 있다. 처음에는 체력훈련을 많이 한다. 프로레슬링은 다른 운동 이상으로 체력이 중요하다. 프로레슬링은 기본적으로 각본에 의한 경기다. 마지막에 큰 기술을 쓸 기회가 온다. 그런데 그 순간 자신의 체력이 떨어져있으면 자신이 다치는 것은 물론 상대 선수를 다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집중력, 체력이 중요하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몸과 상대 몸을 컨트롤하는 훈련을 거친 뒤 본격적인 기술 훈련에 돌입한다.

-요즘에 종합격투기가 주목받고 있는데 종합격투기를 할 생각은 안했나.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종합격투기 쪽에 친분 있는 사람이 많다. 과거 코리안탑팀에서 운동한 적도 있다. 프로레슬링에서 자리 잡고 적절한 시기가 오면 개인적인 팀을 꾸려서 본격적으로 격투기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남자라면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은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합격투기도 남자에게 멋진 스포츠고 도전할 가치가 있다.

김남석이 WWE 프로레슬링 챔피언 출신의 맷 사이달을 상대로 기술을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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