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프로 꿈 이룬 '축구미생'의 '완생' 도전기

  • 등록 2016-02-05 오후 6:12:12

    수정 2016-02-05 오후 6:12:12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부산 강서구 대저동에 있는 부산 아이파크 클럽하우스는 ‘축구판 미생’들로 북적였다.

부산 최영준(51) 감독이 올 시즌 신인 중 일부를 공개테스트를 통해 뽑겠다고 발표하자 400여 명이 몰렸다. 대학·실업선수, 해외에서 뛰던 선수 등 출신은 다양했지만 이들의 목표는 같았다.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1994년생 스물 둘 동갑으로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측면수비수 김대호와 중앙수비수 박경록도 도전장을 냈다. 최 감독은 3일 동안 연습경기를 지켜본 뒤 5명을 최종 발탁했다. 김대호와 박경록도 80대1의 경쟁률을 뚫고 꿈에 그리던 부산 유니폼을 입었다.

김대호와 박경록은 부산에서 줄곧 살았다. 김대호는 장평중-부산정보고-울산대를 나왔고, 박경록은 신라중-동래고-동아대 출신이다. 박경록의 모교인 동래고는 축구 명문인 반면 김대호의 부산정보고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김대호가 “그래도 고2 때 우리가 전국대회 우승을 했다”고 자랑하자 박경록은 질세라 “고3 때 우리 학교가 훨씬 많이 이겼다”며 반격했다.

둘은 같은 학교에서 뛴 적은 없지만 중학교 때 나란히 부산시 대표로 뽑혀 처음 만나 우정을 이어왔다.

지난해 말 둘은 대학교 3학년을 마쳤다. 대학 선수들은 보통 3학년을 끝낸 뒤 프로로 가기에 두 선수에게 중요한 시기였다.

김대호는 작년 5월 올림픽대표에 처음 이름을 올려 베트남-캄보디아와 친선경기에 참가했다. 올림픽팀에 이름을 올리자 프로 스카우트들이 그를 주목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하지만 이런 관심이 오히려 독이 됐다.

김대호는 “사람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부담이 컸고 부상까지 당해 작년 후반기를 망쳤다”고 아쉬워했다. 그래도 올림픽대표 경력이 있으니 1~2개 구단은 자신을 선발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현실은 냉정했다. 불러주는 구단이 없었다. 박경록도 마찬가지로 프로 구단으로부터 입단 제안을 받지 못했다.

둘은 평생 해 온 축구를 그만둬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쳤다.

김대호는 쌍둥이 동생인 김근호도 동의대 축구 선수다. 그는 “형인 내가 먼저 프로가 돼 부모님 짐을 덜어드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될 것 같아 잠이 안 왔다”고 했다.

박경록도 “3학년 때 프로를 못 가고 만약 4학년 졸업하고도 안 되면 진짜 끝 아닌가.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회상했다.

김대호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 밤 늦은 시간 집 근처 공동묘지를 찾은 적도 있다. 난생 처음 혼자 공동묘지에 가서 많은 걸 느꼈다. 그는 “무덤을 보면서 나보다 더 힘든 일을 겪은 사람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부산의 공개테스트가 이들에게 한 가닥 희망이었다.

김대호는 “성남FC 등 몇몇 구단도 공개테스트를 했지만 내 고향인 부산에 무조건 입단하겠다고 결심했다. 하루에 네 탕(4번)씩 운동하며 테스트를 준비했다”고 밝혔다. 박경록도 낙담해 있던 차에 은사의 권유로 테스트에 응시했다.

‘어 너도 왔어?’ 둘은 테스트장에서 마주쳤다.

반가우면서도 우려가 앞섰다 포지션이 달라 직접적인 경쟁 상대는 아니지만 한 명만 붙고 나머지는 떨어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테스트는 엄격하게 진행됐다. 3일 내내 연습경기를 치르며 기량을 검증받았다.

김대호는 “체력훈련을 많이 해서 버텼다”고 했다. 박경록은 아찔한 경험을 했다. “첫 날과 둘째 날 수비수로 뛰면서 만족스럽게 했는데 셋째 날 갑자기 미드필더로 올라가라는 주문을 받았다. 그런데 엄청 실수를 해서 곧바로 수비수로 내려왔다. 탈락하는 거 아닌가 싶어 조마조마했다”고 기억했다.

테스트를 마친 다음 날 두 선수는 사이좋게 합격 통보를 받았다. 김대호는 “아버지와 같이 있을 때 합격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 앞에서 펑펑 울었다. 올림픽팀에 뽑혔을 때보다 더 기뻤다.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다”고 웃었다. 박경록도 “지금까지 축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다”고 미소지었다.

낯선 프로 무대에서 서로의 존재는 큰 힘이 된다. 태국 전훈지에서 둘은 바늘과 실처럼 붙어다닌다.

지난달 30일 귀저우 런허(중국) 연습경기을 마치고 박경록은 김대호가 눈물나게 고마웠다. 박경록은 막상 실전에 투입되자 눈 앞에 하얘졌다고 한다. “바로 앞 미드필더 1명만 보이고 나머지 선수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감을 크게 잃었다”고 했다.

축 처져있던 박경록에게 김대호가 다가와 “평소 담력이 센 놈이 왜 그러냐.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일단 오늘에 충실하자”고 위로했다.

프로 무대 입성에 성공했지만 냉정히 말해 이들은 여전히 ‘미생’이다. ‘완생’이 되기 위한 길은 훨씬 더 멀다. 당장 쟁쟁한 선배들과 주전 경쟁부터 이겨야 한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백지 상태나 다름없기에 앞으로 노력에 따라 도화지에 뭐든 그릴 수 있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한정국 부산 전력강화실장은 “두 선수 모두 가다듬을 게 아직 많지만 열심히 하려는 자세가 돼 있다. 이런 선수들이 더 크게 성장한다”고 기대를 보였다.

둘은 지난달 26일 처음으로 월급을 탔다. 공교롭게 그날 태국으로 출국하는 바람에 통장 내역도 제대로 확인 못했다.

김대호는 “한국에 가면 할머니와 부모님을 모시고 따뜻한 밥 한끼 꼭 사드리겠다”고 약속했다. 박경록도 “지금까지 늘 부모님이 사주시는 밥만 먹었다. 이제는 내가 부모님께 근사한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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