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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의 서울 쌍문동과 2015년의 만재도. 17년의 세월을 가로질러야 닿는다. 도심 한복판, 바다 한복판. 현실감이 떨어지는 공간에 거리를 두고 있다. 두 콘텐츠의 감성 하나는 일맥상통한다. 쌍문동 골목의 다섯 가족, 만재도 파란 지붕의 세 가족. 지지고 볶는 일상이 닮았다. ‘응답하라 1988’과 ‘삼시세끼’가 잊혀진 것을 되돌리는 법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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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88’은 과거를 현재로 옮겨놓은 드라마다. 그 시대를 온전히 담는 게 관건이다. 큰 틀에선 ‘남편 찾기’ 코드에 집중한다. 시대에 대한 감성은 소소한 에피소드의 몫이다.
소품이 중요하다. 연출을 맡은 신원호 PD는 “1980년대로 돌아가니 옛 것을 그대로 구현하기가 더 힘들어졌다”며 “미술팀, 소품팀에 미안해 죽겠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왜 미안한지 알 것 같았다. 1,2회가 방송됐을 뿐이지만 1988년도로 돌아간 듯 생생했다. 10cm 두께를 자랑하는 전화번호집부터 그 시대 사용한 가전제품, 달력, 시계까지. 역시 디테일에 강한 ‘응답하라’ 시리즈였다. 집안 인테리어도 딱 그 시대 그 모습이었다. 방송을 지켜본 4050대 시청자는 “저때 꼭 현관이 저렇게 생겼었다” “주방과 거실, 방 구조 모두 정말 비슷하다” “소파도 꼭 저런 걸 샀고 저런 게 유행이었다”며 공감했다.
에피소드도 중요하다. 추억을 자극하는 적확한 상황이다. 한 집에 모여 놀던 아이들에게 “야! 밥무라!”라는 엄마의 대문 밖 외침은 ‘귀가 시계’였다. “아부지 오신단다”라는 말 한마디로 집었던 숟가락을 내려놔야 했다. 찌개 하나에 김치 하나 놓였던 식탁은 순식간에 ‘엄마 손맛’ 가득한 상차림으로 바뀌었다. “밥 한 공기 얻어 온나”와 함께 “이것도 같이 갔다 주고”라는 말이 따라오면 ‘네버앤딩 반찬 품앗이’가 시작됐다. 공기밥 한그릇 얻어야 하는 상황에 깃들었던 미안함은 예기치 않은 고마움으로 굴러들어왔다. 상추 한 대접, 귤 한 봉지, 깍두기 한 사발이 고마움의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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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호 PD는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가족에 대한 정이었다”며 “가족이 꼭 혈연관계로 엮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우리 이웃, 우리 친구, 우리 애인, 이런 끈끈한 사람 간의 주고 받는 마음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워낙 사람과 잘 어울리고 ‘사람’이 진짜 보물이라고 생각하는 이우정 작가의 평소 가치관과도 가장 잘 맞는 텔링(Telling)이다”면서 “흔히 말하는 옛정, 이웃 간의 정, 바빠서 잊고 사는 그런 온기를 이 드라마로 느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 PD와 이우정 작가의 ‘응답하라 1988’은 그래서 이런 그림을 지향한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한 스태프가 울컥했는지 ‘엄마에게 전화 한통 해야 할 것 같다’는 얘기를 했는데 ‘응답하라 1988’을 보는 시청자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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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어촌 편은 같은 시간대 방송되는 지상파 프로그램보다 시청률이 높다. 본편인 정선에서의 이야기보다도 화제다. 나영석 PD는 “게스트가 늘 오는 정선 편과 달리 만재도에선 3인방의 모습에 집중된 부분이 많아서 그 감성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게 아닐까”라고 짚었다. 시청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하다.
상황의 힘은 자연스럽게 발휘됐다. 짜인 각본대로 움직이는 드라마가 아닌데도 캐릭터가 확실하다. 엄마는 잔소리를 한다. 나가서 돈 좀 많이 벌어오라고 한다. 밥 한 끼 제대로 먹어보자고 한다. 아빠의 어깨는 무겁다. 내 뜻대로 되는 세상이 아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아들은 눈치만 늘어간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알고, 빠져야 할 때를 안다. 어쩌다 양 손 가득한 아빠가 돌아오면 집안은 평화를 찾는다. “뭐라도 좀 만들어봐”라고 거들먹거리는 아빠에게 그날만큼은 ‘쌈닭’ 같던 엄마도 져준다. 눈치만 보던 아들도 이때는 소리 내어 웃을 수 있다. 가족 간 대화가 사라지고, 스마트폰으로 세상에 접속하는 시대다. “같은 2015년을 사는 만재도와 우리 집 안방인데 가족 간 흐르는 기류가 조금 다르다는 걸 느낀다”는 시청자의 반응도 새삼스럽지 않다. ‘삼시세끼’ 어촌 편을 유독 애틋하게 시청하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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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세끼’ 어촌 편은 계절의 변화를 겪었다. 혹독했던 겨울이 가고 만물이 상생하는 여름 그리고 가을을 보냈다. 그 사이 사람도 성장했다. 차승원은 ‘강박’도 있었다. 아침 식사 설거지를 하며 ‘점심 뭐 먹지’를 생각하는 어머니들이 다 그럴 터. 상황이 주는 압박에 뭐든 확실하고 빠른 게 편한 성격도 있었다. 삶의 관점을 여유에 맞췄던 유해진에게 동화됐다. ‘안 되면 말지’, ‘되는대로 하지 뭐’라는 삶의 틈을 받아들였다. 손호준은 보다 만능에 가까운 일꾼으로 성장했다. 주눅이 들었던 막내에서 두 형의 의중을 꿰뚫고 있는 영리한 재간둥이가 됐다. 어촌 편 시즌2를 준비하며 나영석 PD가 느낀 변화였다.
가짜지만 진짜를 닮은 드라마, 진짜지만 가짜이기도 한 예능. 포맷과 상관없이 두 콘텐츠가 지향하는 건 진심을 담은 감성이다. tvN의 한 관계자는 이데일리 스타in에 “‘응답하라 1994’ 당시에도 연이어 방송된 ‘꽃보다 누나’로 많은 시청자들이 잊고 살았던 인간 관계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이번엔 그런 여운이 더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라 더 완성도 높은 콘텐츠로 보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