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홀대' 도리타니로 본 강정호의 '개척자'적 책임감

  • 등록 2015-01-07 오후 3:08:53

    수정 2015-01-13 오후 2:50:35

[이데일리 e뉴스 정재호 기자] 도리타니 다카시(33·한신 타이거스)는 일본프로야구의 정상급 내야수로 꼽힌다.

일본의 명문구단 한신에서만 11년을 뛰며 ‘1611안타와 120홈런 677타점’ 등을 기록했다. 지난해에는 ‘돌직구 수호신’ 오승환(32·한신)과 더불어 한신의 9년만 ‘재팬 시리즈’ 진출에 일익을 담당했다.

생애 가장 좋은 성적이 난 2014시즌 도리타니는 ‘144경기 172안타 타율 0.313 8홈런 73타점 10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20’ 등을 올렸다. 주전 유격수이자 팀 ‘캡틴’으로 정규시즌을 넘어 가을무대까지 팀 공헌도가 빛을 발했다.

도니타니가 ‘찬밥’ 전락한 결정적 배경

일본무대를 주름잡은 베테랑 내야수는 올겨울 기분 좋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고 있으나 예상 밖의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샌디에고 파드레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 등에서 관심을 나타내고는 있으나 미미한 수준으로 토론토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1년 계약이 아니면 힘들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도 아직 정식으로 오퍼(제안)를 넣지도 않은 상태라고 ‘FOX 스포츠’의 존 모로시는 밝혔다. 파드레스 역시 별반 다르지는 않은 상황이다.

도리타니는 같은 시기 메이저리그 문을 두드렸던 강정호(27·넥센 히어로즈)와 또 다른 것이 일본프로야구에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취득해 포스팅(비공개입찰제) 같은 껄끄러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그럼에도 미국 쪽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다. 워낙 빅리그 진출에 대한 꿈이 커 한신의 4년짜리 대형계약 제시를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꿈과 도전을 위해 형편없는 조건에 도장을 찍어야 할지 스스로 고민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도리타니가 이렇게까지 홀대 받게 된 데는 앞서 선배들의 거듭된 실패가 결정적이라고 봐야 한다. 전례나 판례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미국 사회의 특성을 메이저리그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일본프로야구 출신 내야수로 미국에서 확실히 성공한 선수는 전무하다. 빅리그는 일본 국가대표 출신 내야수들의 무덤이나 다름없었다고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과거 ‘제2의 이치로 스즈키(41·FA)’가 될 걸로 엄청난 기대를 모았던 ‘마쓰이 가즈오(39·라쿠텐 골든이글스)부터 이와무라 아키노리(35·야쿠르트 스왈로스), 나카무라 노리히로(41·요코하마 베이스타스), 가와사키 무네노리(33·토론토 블루제이스), 나카지마 히로유키(32·오릭스 버펄로스), 니시오카 츠요시(30·한신)’ 등등 일본야구를 평정한 수많은 특급 내야수들이 하나같이 실패의 쓴맛을 보고 쫓겨 가듯 일본으로 유턴했다.

미국이 본 강정호는 무엇이 달랐나

원인은 다양하게 분석된다. 대체적으로 ‘레그킥(타격 시 다리 드는 동작)’을 동반한 짧게 치는 정교한 타격이 미국에서는 한계를 봉착하기 마련이고 수비 시에는 최고 200km에 달하는 타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짚는 전문가들이 많다.

어떤 의미에서 도리타니보다 훨씬 대단했던 선배들도 못했던 일을 30대 초반의 도리타니가 해낼 거라고 보는 자체가 무리다. 메이저리그 야구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이 마이너리그를 오가는 벤치멤버로 전락하고 잘해야 하위타선에 배치될 ‘똑딱이’ 타자에게 거액을 투자할 구단은 더 이상 없다.

갈수록 냉대 받는 일본 쪽을 보면 강정호의 포스팅 금액(500만2015달러)은 그 자체로 얼마나 큰 값어치를 발휘하는지 새삼 느낄 수 있다. 그것도 ‘스몰마켓’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나온 베팅이어서 더욱 가치 있다.

물론 강정호는 도리타니보다 6살이 젊고 피지컬(신체·운동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렇게 큰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 아시아권 야구라면 오히려 도리타니가 더 나을지 모른다.

아무리 수준이 조금 낮은 한국프로야구라지만 ‘40홈런 유격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어서다. 빅리그 구단은 미국식에 맞는 야구를 하고 그에 어울리는 기술을 가진 강정호의 파워 포텐셜에 주목하고 있다.

또 하나 올겨울 도리타니의 케이스는 한편으로 강정호의 어깨에 주어진 막중한 책임감을 뜻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남은 2주간 무난히 입단협상이 마무리된다고 볼 때 추후 강정호의 성공여부가 강정호 개인만이 아닌 한국야구의 위상과 미래 후배들을 위해 길을 트는 선구자적 선례를 남기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강정호가 잘해야 한국야구와 한국야구의 내야수들이 산다.

강정호가 바람직한 선례를 남겨야 5~6년 뒤 지금 도리타니 같이 홀대에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후배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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